유권자가 비교·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
지난 대선 평가 후 ‘절차 개선팀’ 가동
단순하고 집행 쉬운 현장 매뉴얼 작업
개선 후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
실체없이 퍼져나가는 부정선거 의혹
선관위 서버검증·투표자 수 공개 방침
채용·감사체계 혁신… 의혹 해소 총력
지방 공무원 경력채용 제도도 폐지

부정선거 음모론에 이어 부실선거 논란 등으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공정선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거 관리 전반을 책임지는 중앙선관위를 향한 개혁 요구 또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임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물러난 후 지난 8월부터 조직 실무를 책임지게 된 허철훈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허 총장은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표용지 외부 반출 등으로 부실 관리 지적이 나온 데 대해 “지방공무원을 위촉해 사전투표를 관리하고 있는데, 투표율이 높은 수도권에서는 구·시·군 선관위 직원 전담 관리 제도 실시를 계획 중”이라며 투·개표 관리 강화를 약속했다.
허 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세계일보가 8차례에 걸쳐 연재한 ‘매니페스토, 내일을 바꾸는 약속’ 보도를 거론하며 ‘정책선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책선거가 정착되려면 우선 정당에서 후보자를 빨리 확정해 줘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지역별로 공약을 비교할 수 있는 ‘공약이슈트리’ 사업을 진행해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청사 사무총장실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허 총장과의 일문일답.

―취임 후 약 두 달이 지났다. 앞으로의 각오는.
“중앙선관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동안 저희가 보여드린 모습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른 국민 신뢰를 되찾는 게 중요하다. 국민 신뢰가 없으면 선관위 역시 존립할 수 없다. 이를 위해 국민을 대면하는 현장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들을 계획이다.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 투·개표 현장을 완벽하게 관리하려면 현장에서 집행이 용이한 쉽고 단순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 매뉴얼을 개선할 것이고, 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 개인정보나 수사기밀 등 법에서 금지하는 정보를 제외하고는 선거 과정에서 선관위의 모든 업무를 국민께 알리고, 국민이 원하는 정보를 적기에 전달하겠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이 마련됐나.
“내년 지방선거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제21대 대선 내·외부 평가를 통해 선거 과정의 문제점 파악을 마쳤고, 7월부터 ‘절차사무 개선팀’을 운영하고 있다. 개선팀을 통해 지방선거에 대비한 절차사무 개선방안을 마련, 선거 부실관리 사례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21대 대선에서 투표용지가 반출됐는데.
“국민은 흠결 없는, 완벽한 선거관리를 원하시지만 현실적으로 투·개표 사무원과 관리참관인 등 선거관리 인원만 50만명에 이른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크고 작은 실수가 발생하는 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 점을 국민들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사전투표율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점도 관리 부실을 유발한다. 사전투표 도입 초기와 비교해 투표율이 3배 가까이 높아졌는데 투표시설 개선은 따라주지 않고 있다. 사전투표 장소를 구하는 것도 항상 난항이다. 물론 부실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투·개표 매뉴얼을 정교하게 정비하고, 투·개표 사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무중심 교육도 확대할 예정이다.”
―‘부정선거’ 음모론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다.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팩트(Fact·사실)가 아닌 것에 기반해 퍼져나가는 의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도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위해 다양한 개선책을 마련했다. 먼저 법원이 정해주는 범위 내에서 선관위 서버 검증을 추진하겠다. 사전투표소별로 투표자수도 공개하고, 투·개표 사무원의 국적 확인 절차도 강화하겠다. 사전투표함 보관 상황은 24시간 CCTV로 감시하며 대중에 실시간 공개하고, 일반 투표참관인 제도도 도입한다.”
―투·개표 사무의 지자체 이관 주장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지자체장은 당적을 가진 특정 정당의 당원들이다. 차기 공천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선거관리를 맡기면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번 대선에서도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투표 참여 촉진 행사를 개최하려고 했다.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지역구 투표율을 높여서 이를 공천 때 가점을 받는 데이터로 활용할 의도도 있었다고 본다. 선거관리는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된 별도의 선거관리기관에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딥페이크(허위 조작물)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딥페이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를 활용한 사이버 선거범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허위사실 공표·비방 특별대응팀을 마련해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선관위 인력만으로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등과 협업해 딥페이크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 시범 운영하고 있다. 딥페이크를 발견하는 즉시 포털이나 유튜브에 삭제 요청을 넣고 있다. 아쉬운 점은 국내 포털은 처리 속도가 빠른 반면 유튜브는 미국 본사의 법률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실제 삭제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정책선거’의 부재가 지적되고 있다.
“독일·영국 등 외국과 비교해볼 때 정책선거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책선거를 위한 환경부터 조성돼야 한다. 선거의 주체인 선관위, 정당, 후보자,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당의 경우 후보자와 선거구를 신속히 확정해야 한다. 지금은 선거일이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후보자를 확정하니 그 지역 유권자들을 위한 공약과 정책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정당에서 공약 개발을 맡는 정책연구소나 싱크탱크의 기능도 미흡하다. 선거보조금을 받는 정당들이 정책개발 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선관위도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이를 지원할 의향이 있다.”
―정책선거를 위한 언론의 역할은.
“외국에서는 언론이 정당 정책과 후보자들의 공약을 심층 분석하고, 그 결과를 등급이나 점수로 매겨 서열화한다.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에서는 언론이 정책이나 공약에 관해 비교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때 ‘점수 부여나 순위·등급을 정해 서열화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제108조의 3). 이 조항을 개정해서 언론의 공약 비교평가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관위 차원에서도 국회에 법 개정 필요성을 3차례나 전달한 바 있다.”

―내년 지선의 정책선거 관련 사업은.
“선거 전후로 3년에 걸쳐 축적된 정치·경제·복지·교육 등 여러 분야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정책·지역별 공약 이슈를 추출하고, 이를 유권자에게 알려주는 공약이슈트리 사업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실시한다. 교육 분야에서는 어떤 공약이 화제인지 유권자에게 직접 전달하고, 정당에도 빅데이터를 제공해서 공약 개발에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희망공약 제안하기’ 사업도 추진한다. 유권자가 직접 정책 공약을 제안하고, 이를 선관위가 취합해 정당과 후보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역대 대선에서 발표된 정당·후보자별 정책공약 모음자료도 전자책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9월 말 제작이 완료될 예정이다.”
―‘채용 비리’ 오명도 씻어내야 한다.
“인사 분야에서 나름대로 큰 혁신을 했다. 비다수인 경력채용을 폐지했고, 면접위원은 100% 외부위원으로만 위촉한다. 경력채용 당사자가 선관위에 친인척이 있으면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 무엇보다 자녀 특혜채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지방공무원 경력채용을 폐지했다. 사무총장이 실시한 인사에 대해 감사실이 독립적인 감사도 진행한다. 내부 자정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으니, 국민 신뢰를 되찾을 일만 남았다.”
허철훈 사무총장은…
●1965년 강원 영월 출생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석사 졸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국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획국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상임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획조정실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책실장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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