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 회담서 “올해 내 만남” 거론
6년전 ‘판문점회담’ 재현 가능성도 제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1일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좋은 추억”을 언급한 대목은 단연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재집권 후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말한 것에 대한 호응이다. 이제 관심은 상대를 향한 손짓을 주고받은 두 정상의 재회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을 공표한 다음 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깜짝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에 시선이 쏠린다.

2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주목되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연을 긍정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슷한 표현으로 김 위원장에게 구애의 손짓을 이미 보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졌고, 여전히 그렇다”, “김정은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등의 언급을 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올해 안에 성사시키고 싶다며 시기까지 거론했다.
두 정상의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가정하면 주목되는 무대는 다음 달 31일 시작하는 에이펙 정상회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개최 합의를 공표하며 정상회의 참석 사실을 밝혔다.
현재로선 김 위원장이 경주를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게 중론이다. 그가 만남의 전제조건으로 북한 비핵화 포기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는 점을 확고히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남단의 경주를 찾는 건 ‘적대적 두 국가론’과 배치되는 행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한국도 북한과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해 비핵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목표와는 별개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 부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비핵화는 장기 목표로 두되 북핵 동결에서부터 북핵 협상을 시작하는 ‘3단계 비핵화’론을 제시했다.
자국 내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을 결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6월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한 방식을 재연하는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김 위원장을 향해 ‘만나자’는 메시지를 띄웠고, 김 위원장이 호응하며 예정에 없던 판문점 3자 회동이 성사됐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가 ‘결단’을 내릴지 여부에 따라 북·미 정상 간 만남 재개될 수 있다”며 “그러나 북한의 핵 고수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목표를 못 박지 않은 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동이 성사될 경우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 한국 입장에선 안보 불안을 비롯한 새로운 고민거리를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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