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B 비자 3분의 2는 IT업계 종사자
아마존 인력 1만4000명 넘어 ‘최다’
“규정 발효 전에 입국·출국 취소하라”
美 IT 기업들 외국인 직원들에게 통보
H-4 비자 보유자들에도 美 체류 권고
H-1B 비자 신규 발급 年 14만건 넘어
美 고용주들 연간 비용 20조 부담해야
“H-1B 프로그램 완전히 중단될 수도”
韓 “글로벌 우수인재 국내 유치 기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른바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100배 인상하기로 하면서 미국 내 주요 정보통신(IT) 기업에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백악관은 새 비자 규정이 기존 비자 소지자의 미국 출입국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비자 제도의 적용과 집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불안감은 미국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아마존 등 기업은 외국인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새로운 비자 규정이 발효되기 전에 미국으로 돌아오고 출국 계획도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MS는 트럼프 행정부 발표 이후 자사의 H-1B 비자 직원들에게 “당분간 미국 내에 체류해야 한다”, “현재 중요한 개인 사유로 해외에 있는 동료들의 귀국을 보장할 것”, “향후 며칠간 입국장에서 일부 혼선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H-1B 비자 소지 근로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기업 아마존도 H-1B 소지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발급되는 H-4 비자 보유자들에게도 미국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비자 소지자들은 갑작스러운 비자 규정 변경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영국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이주해 미국 기업에 근무할 예정이었던 한 구직자는 회사의 이민 변호사들로부터 “추가 정보를 기다리며 영국에 머물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 구직자는 트럼프 행정명령 서명 시점에 이미 영국의 집을 임대 주고 가족들과 작별인사까지 한 상태였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가까운 시일 내 H-1B 비자를 신청하려고 했던 외국인 인력들은 더욱 혼란에 빠진 상태다. 미국 대학원에 재학중인 한 인도인은 “많은 구직 희망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으며, 행여 불이익이 있을까봐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H-1B 비자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있던 미국의 IT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른바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는 주로 미국 IT 기업들이 엔지니어, 과학자, 프로그래머를 채용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국(USCIS) 통계에 따르면 2023년 H-1B 비자를 받은 인원 중 약 3분의 2는 IT 업계 종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 기준 H-1B 비자를 할당받은 기업은 ‘아마존닷컴’으로 1만44명에 달하며, 계열사까지 합치면 1만4000명이 넘는다. 인도 뭄바이에 본사를 둔 IT 서비스·컨설팅 기업 ‘타타 컨설턴시’(5505명분)가 두 번째로 많고, MS(5198명분)와 메타(5123명분), 애플(4202명분), 구글(4181명분)이 뒤를 이었다.


이번 H-1B 비자 수수료 인상으로 미국 기업들이 연간 20조원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USCIS 통계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에서 발급된 신규 H-1B 비자가 모두 14만1000건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만약 내년에도 H-1B 비자 발급 건수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미 고용주들은 연간 총 140억달러(약 20조원)를 부담하게 된다.
백악관은 새 비자 규정 발표 이후 논란이 커지자 대폭 인상되는 이번 수수료는 기존 비자 소지자의 미국 출입국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신규 비자에 일회성으로 부과된다고 해명했지만, 비자 제도의 적용과 집행에 대한 불확실성을 잠재우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수수료 증액 정책이 일부 미국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대다수 근로자들에게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재임 당시 노동부 수석 경제학자로 근무했던 제니퍼 헌트 러트거스 경제학 교수는 “이번 비자 수수료 증액은 H-1B 프로그램을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다”며 “전반적으로 H-1B 비자는 미국 근로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업무를 돕고 생산성을 증진하는 보완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미 정부의 H-1B 비자 수수료 인상을 우수 인재를 국내로 유치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국의 비자 정책 변화를 글로벌 이공계 인력의 국내 유치 기회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강 실장은 “정부는 기술이 주도하는 초혁신 경제 실현을 위해 AI(인공지능) 대전환 등에 내년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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