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동결 먼저” 주장 비현실적
자주국방 여건 갖췄나 따져보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제 최고인민회의 연설 도중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어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 인정에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 비핵화가 의제에서 빠지는 경우 2019년 이래 중단된 북·미 정상회담을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의사 표시 아니겠는가.
미국 대북 정책의 1차 목표가 북한 비핵화라는 점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본인은 여러 차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불렀다. 트럼프 재집권 후 한·미 양국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른바 ‘스몰 딜’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되 북한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및 시험 발사를 중단하는 내용의 타협을 의미한다. 한국 입장에선 북한의 핵 위협에 영원히 노출된 채 살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핵 해법으로 ‘동결→축소→비핵화’의 3단계 구상을 내놓았다. 어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첫 단계로서 동결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미국과 북한이 당분간 북한의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는 데 합의할 경우 이에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결’이란 어휘 자체가 이미 북한에 핵무기가 존재함을 전제한 표현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한국도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그릇된 신호를 보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더욱이 북한이 동결에서 멈추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이를 강제할 텐가. 이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방안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이 그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굴종적 사고”라고 발언한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물론 자주국방의 필요성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언급한 ‘외국 군대’란 주한미군을 지칭한 듯하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 공격이라면 모를까, 핵무기 공격을 우리가 어떻게 혼자서 방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대통령은 한국에 핵 억지력을 제공하는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중대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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