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적 미학 통치를 연상
문화·예술 시대적 흐름 거슬러
美사회 배타주의 확산 우려돼
지난 8월 28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건축에 관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연방 건축물을 다시 아름답게’라는 구호를 내세운 이 명령은 정부청사와 법원 등 연방 건물을 ‘고전’ 양식으로 짓도록 강제했다. 이 명령에 따라 앞으로 미국 연방 건축물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름답다’고 규정한 그리스 신전처럼 웅장한 석조 건축물과 흡사하게 지어야 한다.
미국 건축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 건축가협회(AIA)는 성명을 통해 연방 건축의 다양성과 지역적 맥락을 무시한 획일적인 미학의 강요라고 반대했다. 건축은 시민과 지역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는 공공 행위이지 권력이 선호하는 양식을 강제로 복제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AIA는 트럼프의 명령은 결국 창의성을 억누르고 민주적 참여를 차단하며 지역 건축의 생명력을 말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유력 주간지인 ‘뉴요커’와 ‘네이션’은 트럼프의 명령이 ‘전통의 미’를 ‘정치권력’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며 이는 결국 건축을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평가들은 ‘고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그것은 미국의 다원성을 무시하며 엘리트적이고 서구적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작성된 ‘연방 건축 지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건축 평론가이자 연방 건축 고문이었던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에게 지침 작성을 의뢰했고, 모이니핸은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예술적 탁월성이다. 연방 건축은 시대의 건축적 흐름을 반영하는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구현해야 한다. 특정 양식을 강제하지 않고 당대 건축가의 창의성과 현대적 흐름을 존중한다. 둘째, 연방 건축은 국민의 공간이므로 위엄과 품격을 갖추되 개방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건축은 정부의 힘을 과시하는 기념비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공의 장소여야 한다. 셋째, 지역적 맥락에 대한 존중이다. 건물이 세워지는 지역의 건축적 전통, 환경, 도시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연방 건축은 획일적 행태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지침은 20세기 후반 미국 연방 건축에서 현대 건축의 확산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건축 사조(思潮)는 대체로 장식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미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1896년 발표한 그의 에세이 ‘고층 오피스 건축물에 관한 예술적 고찰’에서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고 갈파했다. 설리번은 건축물의 형태는 작위적인 장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의 기능과 구조, 그리고 재료의 필연성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건축의 본질은 구조, 기능, 재료의 논리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1908년 발표한 에세이 ‘장식과 죄악’에서 “장식은 죄악이다”고 선언하며 당시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아르누보’ 건축을 비판했다. 아르누보 건축은 ‘삶을 아름답게’라는 구호 아래 직선 대신 덩굴이나 꽃 등 자연을 모티프로 한 유기적인 곡선을 사용했다. 로스는 문화와 예술은 역사적으로 장식을 없애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장식은 문화적 후진성을 드러내며 노동력과 자원을 낭비하는 범죄라고 규정했다. 장식을 배제하고 건축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설리번과 로스의 건축 철학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과 20세기 후반 이후 현대 건축의 큰 흐름이 되었다. 1962년 미국의 ‘연방 건축 지침’ 역시 이 흐름 속에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문화와 예술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각계의 지적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방 건축물을 ‘고전’이라는 특정 양식으로 세우려고 할까? 트럼프의 명령은 기념비적인 웅장한 외관과 특정 양식을 고집하던 과거 권위주의 독재 정권을 연상시킨다.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서 건축은 자주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 이용되었다.
나치 독일은 고전 양식을 부활해 로마 제국의 건축물과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대칭성과 거대한 기둥을 가진 위압적인 규모의 석조 건물을 지었다. 히틀러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를 나치 독일의 건축 책임자로 임명해 자기의 정치적 야망을 건축과 도시로 연출하고자 했다. 슈페어는 34만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스타디움을 나치의 집회를 위해 만들었고, 세계를 제패하고자 한 히틀러의 야망에 따라 베를린을 ‘게르마니아’라고 이름 붙인 세계의 수도로 계획했다. 히틀러는 건축을 그가 ‘최종 단계의 제국’이라고 구상한 나치의 ‘제3 제국’이 ‘제1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정당화하는 시각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 시절에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고전’을 표방해 사회주의 체제의 힘과 미래 지향성을 과시할 수 있는 건축을 표방했다. 이를 위해 거대한 기둥과 화려한 장식 그리고 대칭성을 강조해 웅장함을 표현함으로써 나치 건축과 유사한 기념비적 건축을 추구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권력을 잡은 트럼프가 ‘연방 건축물을 다시 아름답게’라는 행정명령으로 자신의 취향을 대중에게 강제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같은 기조가 사회의 다른 분야까지 얼마나 더 확산할지 두고 볼 일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하는 미국에서 특정 인종과 문화가 우월하다는 극단적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자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는 자기장과 같아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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