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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돌아온 서기 “자전적 상처 스크린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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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2 20:00:00 수정 : 2025-09-22 16:16:30
부산=이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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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녀’ 각본·연출 모두 맡아 주목
폭력·가난 속에 보낸 유년기 등 담아
“힘겨운 아이들에 ‘혼자 아니다’ 메시지”

1988년 대만 타이베이. 십대 소녀 ‘샤오리’의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고, 미용사 어머니는 장녀 샤오리에게 유독 가혹하며 차녀만 편애한다. 샤오리는 종종 배고픔과 탈진으로 쓰러져 교실이 아닌 양호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소녀는 미국에서 온 전학생 ‘리리’와 친구가 되며 폭력과 학대로 가득한 가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일탈을 꿈꾼다.

중화권 대표 배우 서기(49·사진)의 감독 데뷔작인 영화 ‘소녀’는 그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아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서기는 2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내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출발했다”며 작품에 자신의 상처가 진하게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영화는 샤오리처럼 폭력과 가난 속에 유년기를 보낸 서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겸 감독 서기가 2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작품 ‘소녀’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거장 허우샤오셴(78) 감독의 조언은 영화의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서기는 “시나리오 작업 도중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을 때 허우 감독님이 ‘네가 잘 아는 이야기, 네 체험에서 출발해보는 건 어떠냐’고 조언해주셨다”고 전했다.

연출에 도전해보라고 처음 제안한 이 역시 허우샤오셴이었다. 서기는 그의 영화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 ‘자객 섭은낭’ 등에 출연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서기 감독은 시나리오 탈고 이후 캐릭터의 성격이나 말투 등을 배우의 특성에 따라 조정했지만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상처’라는 테마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담아냈다고 밝혔다.

영화는 샤오리의 성장 서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기는 샤오리의 어머니를 촬영한 첫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해당 장면은 어머니가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남편을 출근시킨 뒤 온갖 집안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담았다. 서기는 “집안일을 끝낸 여인이 어깨를 떨어뜨리는 뒷모습을 모니터로 보다가 그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느껴 지금처럼 눈물이 났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내게 왜 그렇게까지 냉정했을까 원망했지만, 그 시절 어머니는 짊어진 책임이 너무 무거워 사랑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이 영화를 만들고 비로소 진심으로 어머니를 용서했고, 진짜 화해를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배경은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후반이지만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해 왔습니다. 관객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외롭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계기를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0여년 경력의 배우로서 첫 연출에 도전한 소감에 대해 그는 “감독으로서 채워야 할 빈칸이 너무 많았다”며 “생각해야 할 것도, 책임져야 할 일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좋은 것은 잘 흡수하고, 나쁜 것은 과감히 덜어내며 다음 작품에서는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다”며 감독으로서 성장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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