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의 새 얼굴 만들어 내
美 대외 정책·국내 정치 전반에
변화를 추동할 기반으로 작용
찰리 커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단순히 정치운동가 한 명이 생을 마감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커크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국 보수주의의 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기에, 그의 부상과 몰락은 오늘날 미국 보수 진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또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향할지 짚어볼 단서가 될 수 있다.
1993년생인 커크는 대학 시절부터 자유주의 담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2년 그가 설립한 ‘터닝 포인트 USA(Turning Point USA)’는 소규모 캠퍼스 조직에 불과했으나, 전국적인 청년 보수 네트워크로 빠르게 성장했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고, 곧 마가(MAGA)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이념 설파가 아닌 문화전쟁을 전면에 내세우며 교수와 학생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고, 자유주의적 경향의 강의와 연구를 좌파의 세뇌라 규정하며 대학을 미국 사회의 새로운 전장으로 만들었다.
커크의 활동은 캠퍼스 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TPUSA Faith라는 별도 조직을 통해 복음주의 교회 네트워크와 활동을 함께했다. 교회를 단순히 신앙 공동체가 아닌 정치적 동원의 장으로 활용하며 청년 신도들을 대상으로 진보적 가치관에 맞선 보수적 메시지를 확산했다.
이로써 커크는 청년 보수층과 종교적 보수층을 연결하는 가교가 되었고 공화당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그의 영향력이 미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수준은 아니다. MAGA 진영으로부터는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지만 무당파 혹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커크는 분명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설계한 전략가는 아니지만, 그의 활동과 메시지는 분명 미국 보수주의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미국 보수주의는 더 이상 미국의 국제주의적 리더십과 신중한 외교적 자제(restraint)를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국내 정치와 정체성 갈등이 외교와 안보 논의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동맹문제는 전략적 필요가 아닌, 비용 분담과 국익 우선이라는 구호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커크와 같은 인물의 영향 아래 젊은 보수층에게도 더욱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요컨대 커크는 지성적 담론을 통해 보수주의를 이끈 인물이 아니라, 대중 동원과 정체성 정치를 통해 미국 보수주의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활동은 오늘날 미국 보수가 어떠한 기반 위에서 미래를 모색하는지 보여준다.
분명 커크의 죽음은 ‘순교’라고 표현될 만큼 MAGA 진영의 단기적 결집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남긴 공백은 새로운 인물이 메울 수도 있고 MAGA 진영 내부의 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다.
경제 민족주의자, 전통 보수, 사회 보수, 이민 강경파, 국가안보 매파 등 다양한 분파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 트럼프 지지자 연합은 단일하지 않으며, 트럼프라는 인물에는 결집하나 정책 우선순위, 운동방식과 노선에서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커크와 같은 인물의 부재는 이질적 분파 간 경쟁 심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커크가 남긴 보수 진영의 변화 궤적은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 변화는 앞으로도 미국 대외정책과 국내 정치 전반의 변화를 추동할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이 다시 과거의 자유국제주의 질서를 견인하던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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