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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섬에 걔 혼자 갔지?”…중국인 구하고 숨진 해경 마지막 모습 [사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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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1 08:40:00 수정 : 2025-09-21 16:32:39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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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해경(故이재석 경사) 순직 사건
고립자 만나고 최소 55분 생존…해경, 보고서 오기
2인1조 출동 원칙 안지켜지고…구조 시스템도 미흡
李 대통령 “엄정 조사” 지시…검찰, 해경 강제 수사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혼자서 구하려다 순직한 해양경찰관 이재석(34) 경사가 고립자와 만난 뒤 최소 55분간은 생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초기 대응이 적절하게 이뤄졌다면 순직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은 이 경사가 홀로 출동한 경위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1일 오전 3시10분쯤 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 고립된 노인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준 이재석 경사가 손전등과 휴대전화를 쥔 채 생존수영을 하는 모습. 채널A 보도화면 캡처

 

21일 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3시49분쯤 드론 순찰 업체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이 경사의 모습이 포착됐다. 출동이 지연되던 그 시각 이 경사는 손전등과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생존수영을 하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발을 계속 움직이며 버티지만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경사가 인천 영흥도 갯벌에 고립된 중국 국적 70대 남성을 만난 2시54분부터 55분이 지난 시점에서도 생존해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 상황이 기록된 재난안전통신망 녹취록을 보면 파출소 직원은 드론팀을 만난 사실을 알리면서 “재석이랑 요구조자 지금 움직임이 보인다고 한다”며 “지금 물에 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해경은 근무일지를 토대로 작성한 사고 보고서에는 “오전 3시27분 드론 모니터링 중 구조자 및 요구조자 위치 소실”이라고 잘못 기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은 지난 17일 설명자료를 내고 “당시 드론 영상과 무전 녹취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 경사가 드론에 마지막으로 포착된 시간이 알려진 내용과 다른 것을 확인했다”며 “정확한 시간과 오류발생 경위는 외부 독립기관에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혼자 구하려다 숨진 고(故) 이재석 경사의 영결식이 진행된 15일 오전 인천 서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고인의 유족들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인천=뉴시스

 

2인 1조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녹취록도 공개됐다. SBS에 따르면 이 경사가 실종된 지 2시간 넘게 지난 새벽 5시54분쯤 영흥파출소 팀장은 유족이 전화를 걸어 “왜 섬에 걔 혼자 들어갔나요? 경찰이 그렇게 혼자 원래 들어가게 돼 있습니까?”라고 묻자, “인원이 많으면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상황에 따라서 다른데 그때는 일단 안전에는 큰 우려되는 사항이 없다고 판단을 했다”고 답했다.

 

유족은 이 팀장이 2인 1조 규정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이 경사를 홀로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팀장은 최근 대기발령으로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지난 11일 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 고립된 중국 국적 남성에게 이재석 경사가 구명조끼를 벗어주는 모습.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이었던 이 경사는 지난 11일 오전 2시7분쯤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드론 순찰 업체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혼자서 출동했다가 구조 과정에서 실종됐고 결국 숨졌다.

 

당일 오전 2시42분쯤 현장에 도착한 이 경사의 보고에 팀장은 “어떻게 추가 누구 좀 보내줄까 깨워서?” “서에다 보고를 하고 ○○랑 XX를 깨워서 같이 상황 대응을 하자.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긴 했지만 추가 인력 배치 조치가 즉각 이뤄지진 않았다. 이 경사는 노인에게 자신의 부력 조끼를 벗어주고 오전 2시57분쯤 “물이 제 허리 정도 차고 있습니다. 지금” “구명조끼 터트려서 이동시키도록 하겠습니다”고 파출소에 전했다. 이 경사의 육성이 담긴 교신은 이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지난 15일 인천 서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엄수된 해양경찰관 고(故) 이재석 경사 영결식에서 김용진 해양경찰청장이 헌화 후 경례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당시 파출소 당직자는 모두 6명이었으나 이 중 4명이 규정보다 많은 휴게시간을 같은 시간대에 부여받은 탓에 이 경사와 당직 팀장 등 2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이 경사가 바다에서 실종된 후 실질적인 구조 장비가 투입될 때까지는 40분가량이 소요됐고, 직원들은 해상 순찰차 예비키를 제때 찾지 못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밀물이 급속도로 차오르는 환경이었지만 2명이 출동했다면 서로 역할을 분담하며 추가 구조세력을 요청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동력 서프보드를 투입해 수색을 실시한 시각은 오전 4시5분으로, 드론 순찰 업체가 이 경사의 위치를 잠시 놓쳤다고 알린 시점보다 약 40분 뒤였다. 군 열상감시장비(TOD)를 토대로 수색 지점이 공유됐으나 구조 헬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동해 10분 넘게 혼선을 빚은 사실도 드러났다. 엔진 과열로 고무보트에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동력 서프보드와 드론의 배터리가 방전돼 일시적으로 구조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경사는 오전 9시41분쯤 옹진군 영흥면 꽃섬 인근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혼자 구하려다 숨진 고(故) 이재석 경사 팀원들인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직원들이 지난 15일 오전 이 경사 발인을 앞두고 인천 동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사고 당일 이 경사와 함께 당직을 섰던 팀 동료 4명은 지난 15일 인천 동구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영흥파출소장으로부터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사건과 관련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 경사의 사고 경위와 관련해 “해경이 아닌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에 맡겨 엄정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2인 1조로 수색 및 구조 작업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이 경사가 사건 당시 혼자 구조를 진행했다는 보고를 들은 뒤 “초동대처에 있어 미흡한 점이나 늑장 대응이 없었느냐”고 재차 확인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사안의 중요성과 일선청 인력 사정 등을 고려해 대검 반부패기획관을 수사팀장으로 인천지검에 급파하고 대검 검찰연구관 1명, 인천지검 반부패 전담 검사 등 3명을 팀원으로 하는 수사팀을 구성했다. 수사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상 과실치사, 직무유기,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이광진 인천해양경찰서장, 영흥파출소장, 당직 팀장 등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이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꾸린 영흥도 경찰관 순직 관련 진상조사단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지난 16일 활동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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