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식 양도 차익에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종전처럼 ‘종목당 5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은 개편안이 자본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여론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행 제도가 대주주에 대한 과도한 감세라면서 ‘응능부담’(부담 능력에 따른 공평 과세) 원칙에 따라 ‘종목당 10억원’으로 과세 범위를 넓히려 했지만, 여당을 중심으로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결국 정부안을 철회했다. 이를 두고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기본원칙이 훼손된 것은 물론 향후 증세를 어렵게 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기획재정부는 15일 “지난 7월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대주주 범위 조정 여부에 대해 시장의 의견을 종합 청취하고 국회와 긴밀히 논의해 왔다”면서 “그 결과 자본시장 활성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 등을 고려해 대주주 범위를 현행과 같이 ‘종목당 보유금액 50억원 이상’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31일 세제개편안에서 대주주 강화 방침을 밝힌 지 약 한 달 반 만에 정부안을 공식 철회한 것이다.
정부가 주식양도세 과세 강화 기조를 되돌린 것은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말 세제개편안을 통해 이전 정부에서 대주주 기준이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됐지만 주식시장 활성화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데다 대주주에 대한 과도한 감세로 조세형평성이 저해됐다면서 대주주 기준을 환원키로 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 직후인 지난 1일 코스피가 3.8% 넘게 급락하는 등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거리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10일 “대주주 기준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10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주식시장이 장애를 받는다면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내려야 한다고 반드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정책 선회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제당국 내에서는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강화 방침이 철회될 경우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다른 금융세제 역시 당초 정부안보다 줄줄이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여론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일각에선 주식 양도세 강화 방침이 철회되면서 향후 조세정책의 신뢰성은 물론 조세 형평성 역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정부는 대주주 기준을 강화하면서 양도세 회피를 위한 연말 매도 증가 등은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대주주 기준이 강화된 2017년과 2019년 순매도가 전년 대비 증가한 경우가 있었지만 기준이 완화된 2023년도에도 오히려 순매도가 전년보다 증가했다면서 시장 수익률이 매도 여부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큰 손 투자자들의 연말 매도 증가로 개미투자자만 피해를 본다’는 증권시장의 우려를 조목조목 반박했음에도 정부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두 달도 안 돼 원칙 없이 후퇴했다.
결국 소수의 초고액 자산가만 혜택을 받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장주식 양도세를 낸 투자자는 3300여명으로, 1인당 평균 양도차익은 28억원에 달했다. 종목당 10억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추가 과세 대상은 전체 투자자의 0.02%에 불과한 2500명 정도다.
더 큰 문제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무산된 상황에서 대주주 기준마저 현행대로 유지되면서 향후 증세를 통한 세입 확충이 더욱 쉽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노동소득과의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라도 자본소득 과세를 주요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권고(국회예산정책처)가 많았지만, 이번 조치로 조세 정책이 주식시장 활성화의 도구 정도로 격하됐다는 것이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조세는 경제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정책과 비교해 원칙이 중시되는데, (이전 정부 제외) 대주주 기준이 확대됐던 상황에서 그걸 안하겠다는 것이니까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면서 “향후 증세가 필요한 시점에도 증세를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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