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에 “공정성 상실… 美 행위 문제시해라”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밝히자 북한이 “도발적 행태”라며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는 불가역적”이라고 반발했다. 다음 주 개최되는 유엔총회를 앞두고 북한이 핵 보유 정당화를 꾀하기 위한 외교전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대표부는 공보문을 통해 “최근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관리 이사회 회의를 계기로 우리의 핵 보유를 ‘불법’으로 매도하면서 ‘비핵화’를 운운하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을 또다시 감행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에 “내정간섭”, “주권침해 행위”라면서 “변함없는 대조선 적대적 의사를 다시금 드러내 보인 미국의 도발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 배격한다”고 했다. 또 “미국은 국제회의 마당에서 시대착오적인 ‘비핵화’ 주장을 되풀이했다”며 “우리의 헌법 포기, 제도 포기가 저들의 대조선정책의 종착점이며 우리와 공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빈은 유엔 사무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소재지로, 북한은 이곳에 상설대표부를 두고 있다. 최근 개최된 IAEA 이사회에서 미국 대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공보문에서 자신들의 핵 보유는 “힘의 균형을 위한 필연적 선택”, “세계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핵심적 역할”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확장억제력 제공’과 비핵 국가들과의 핵 공유 실현, 핵잠수함 기술 이전과 같은 우려스러운 핵 전파 행위들을 즉시 중지해야 한다”고 화살을 돌렸다.
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미·일 군사훈련 등 미국의 동맹 정책을 ‘핵 전파’로 규정함으로써 미국을 비확산 체제의 위반자로 몰아 특히 중국, 러시아, 비동맹 국가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유도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IAEA를 향해서도 “독자성과 공정성을 상실”했다면서 “30여년 전부터 우리와 공식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핵확산금지조약, NPT)밖에 존재하고 있는 핵보유국의 내정에 간섭할 아무런 법적 권한도, 도덕적 명분도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했고, 이듬해 10월 ‘제네바 합의’에 따라 잔류하기로 했다가, 2003년 1월 완전히 탈퇴했다. 이어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의무를 난폭하게 위반하고 있는 미국의 악성 행위에 대해서부터 문제시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엔 산하 기구에도 공세를 가하며 핵 보유 정당화를 위한 공세적 외교전을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오는 23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엔총회의 연설자로 외무성 부상(차관)급 인사를 7년 만에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조만간 외무성 부상급의 유엔총회 연설을 앞둔 여론 잡기 예고편”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부쩍 국제무대에서의 적극적 행보에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인이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며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했을 뿐 아니라, 다음날 열린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유엔 등 다자 플랫폼에서 조정 강화”를 당부했다. 유엔 대북 제재 문제를 비롯한 국제 외교 무대에서의 중국의 협조·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9일 외무성 국장들에게 “적수국들에 외교적으로 선제대응하고 급변하는 지역 및 국제 지정학적 상황을 우리의 국익에 유리하게 조종”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구상을 전달했는데, 이 역시 다자 외교 무대에서의 외교적 역량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앞으로 북·러 밀착, 북·중 관계 정상화를 바탕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에 더욱 공세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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