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난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한국 측과 약속했던 노동자 추도식이 2년 연속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일본 측 추도사에 이번에도 조선인 노동자 동원의 강제성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한국 측이 불참하기로 하면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측은 일제강점기 노동자 동원의 강제성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서 추도식 문제가 향후 대일외교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간부는 “강제성으로 선을 그으면 앞으로도 타협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전시(戰時) 징용은 국제조약에 반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시절인 2021년 “한반도에서 내지(內地·일본을 의미)로의 이입(移入·옮겨 들어옴) 경위에 여러 가지이며 이런 사람들에 관해 ‘강제연행됐다’ 혹은 ‘강제적으로 연행됐다’ 또는 ‘연행됐다’고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한 바도 있다. 1997년 3월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당시 문부과학성 중등교육국장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무 동원에 관해 “모집, 관 알선, 징용 등 저마다 형식은 달랐더라도 모두 국가의 동원 계획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했다는 점에서는 틀림없다”고 답한 것과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지난해 일본이 이곳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한국 정부는 전체 역사를 반영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은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을 설치하고 추도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날 사도섬 서쪽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추도식 역시 행사 명칭부터 명확한 추모 대상이 드러나지 않는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진행됐다.
일본 정부를 대표에 참석한 오카노 유키코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은 추도사에서 “광산 노동자 중에는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도 포함됐다”며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토지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고 했지만, 이들 동원의 강제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매체들은 추도식에 한국 측이 2년 연속 불참했다고 보도하면서도 당장은 이 문제가 한·일 관계의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케이신문은 “이재명 정권은 사도광산 추도식 참석을 보류했지만 일본에 대한 강한 비난은 피했다”며 “역사문제가 경제·안전보장 등에 관한 한·일 협력에 영향을 주는 것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전했다.

아사히 역시 “일·한(한·일) 모두 추도식 문제가 양국 관계 전반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억제 대응하려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역사·영토 문제와 다른 분야를 구분해 대응하는 ‘투 트랙 기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 정부 역시 “상호간에 ‘로키’(Low Key·절제된 대응) 로 관리해 가면 좋겠다”(외무성 간부)는 인식을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아사히는 다만 사도광산 노동자 추도식 문제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과제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퇴진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신문에 “이재명 정권이 ‘양호한 한·일 관계가 플러스가 된다’고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일본 측의 경제협력 등 호응이 없다면, 대일 정책에 관한 (한국) 국민의 불만이 쌓여 추도식 문제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이달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한 뒤 방한해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조율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10월4일로 예정된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 이전에 한국을 찾아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의 지속과 한·일 관계 개선 흐름을 확실히 하려는 목적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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