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니코틴 규제 논의가 국회 문턱에서 또다시 좌초됐다. 2016년 ‘합성니코틴을 담배 정의에 포함시키자’는 첫 법안이 발의된 이후, 10여 년간 공청회·연구용역·소위 상정 등 수차례 논의가 이뤄졌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 연구용역 결과는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다수 유해물질이 검출됐음을 확인하며 규제 필요성을 공식화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발목을 잡혔다. 여야의 정쟁과 일부 의원들의 반대 논리 “연구 신뢰성 부족” “업계 생존권 위협”이 국회의 책임 회피를 반복하게 만든 것이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개정안은 안건으로 올라갔으나 일부 의원의 반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여야가 비공식적으로 법안 처리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나왔지만 곧바로 뒤집혔다.
하반기 국회에서는 아예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공공기관 운영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 속에 소위가 무산되면서 합성니코틴 규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치권이 사실상 국민 건강을 정쟁의 소모품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 잎 유래 니코틴만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 합성니코틴 액상담배는 법적으로 담배가 아니다. △경고문구·그림 부착 의무 △광고·온라인 판매 제한 △담배소매상 지정 △세금 부과 등 기본적 장치에서 빠져 있다.
이로 인해 합성니코틴 제품은 무인점포·온라인 플랫폼에서 청소년에게 쉽게 노출되고 있으며, 기존 담배 소매상(약 12만7000명)은 엄격한 규제를 지키면서도 역차별을 호소한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은 궐련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궐련보다 액상담배 사용률이 높게 나타났다. 냄새가 적고 휴대·은닉이 용이하다는 특성이 청소년 흡연 확산의 주요 요인이다.
신분 확인이 허술한 무인점포·온라인 판매 환경은 이 같은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 흡연을 넘어 치안·보건 위기로 확장된다. 국가정보원은 신종 마약을 액상 전자담배에 주입해 대량 밀반입하려던 조직을 적발한 바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전자담배 액상에서 마약 검출 건수는 2022년 924건에서 2023년 2058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청소년이 직접 마약 흡연·유통에 가담한 사례도 늘고 있다. 액상담배가 ‘마약 유통의 새로운 통로’로 전락한 것이다.
합성니코틴 규제가 지연되는 사이 업계는 이미 ‘유사니코틴’ ‘무니코틴’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분자 구조를 바꿔 효과는 유지하되 검출을 피하는 방식이다. 과거 천연니코틴의 잎→줄기·뿌리→합성으로 이어진 ‘규제 회피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원료 중심의 규제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며, 니코틴 유사물질 전체를 포괄하는 법적 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합성니코틴 제품은 담배세 부과 대상이 아니어서 동일한 니코틴 효과를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현저히 낮다. 세금이 붙는 일반 담배 대비 가격 경쟁력이 과도하게 높아 조세 형평성이 무너지고, 공중보건 비용은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합성니코틴 규제 지연에는 정치의 책임이 분명하다. 일부 의원들의 반대와 여야 정쟁이 10년간 반복되며 국민 건강은 후순위로 밀렸다. 청소년 흡연 증가, 마약 유통 악용, 조세 형평성 붕괴라는 복합적 사회 문제는 정치의 무책임 속에 방치됐다.
합성니코틴 규제는 단순한 산업 규제가 아니라 △청소년 보호 △사회 안전 △시장 공정 △조세 정의를 아우르는 문제다. “법안 지연은 행정적 차질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건강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경고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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