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핵무장 연대 대내외 과시
대북 평화구축 집착 의미 없어
韓, 국제사회 위상 고양 집중해야
최악의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3일 북·중·러 3국 정상은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연대를 과시했다. 시진핑은 세계가 평화냐 전쟁이냐 선택에 직면했다면서 인류 평화와 발전의 숭고한 대의를 연설했다. 그런데 막상 손을 잡은 것은 푸틴과 김정은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유럽을 위협하는 러시아, 국제 핵 질서를 무시하고 위법적인 핵 개발은 물론 전쟁까지 불법적으로 개입한 북한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위협을 대변한다. 결국 3국의 연대는 자국 이익을 위해 그 어떤 불법과 폭력도 거리끼지 않겠다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악의 연대에 불과하다.

북·중·러 연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북한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2021년에 이르자 북한은 제8차 당대회에서 핵 능력 고도화를 바탕으로 자력갱생을 펼치겠다는 대안 전략을 제시했다. 중국의 적선으로 생존해 온 북한은 애초에 외부의 도움 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국과 정상회담 시에는 북한에 큰 관심을 보이던 중국과 러시아는 막상 이후에는 또다시 냉담해졌다.
북한은 한반도 밖으로 탈출구를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시대착오적 독재국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역시 중·러 양국뿐이었다. 북한은 반제국주의 연대, 즉 미국에 대항하는 연대를 외치면서 러브콜을 보냈다.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한은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전선 고착과 탄약 부족으로 곤란에 빠진 러시아가 북한에 손을 내민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손을 잡은 후 힘껏 당겼다. 전시비축탄을 제공함은 물론 병력까지 제공한 것이다.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동반자조약”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동맹을 허용했고, 북한은 쿠르스크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승리에 기여함으로써 동맹을 넘은 혈맹임을 입증했다. 러시아는 자금과 자원, 무기와 기술지원, 경제지원 및 협력 등으로 보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더욱 큰 보답은 따로 있다. 북한에 국제사회에서 후원자로 위치하며, 심지어 한반도 사태에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북·러의 밀착을 우려한다. 애초에 중국의 한반도 정책목표가 안보적 완충지대로서 북한 정권의 생존임을 감안한다면 북·러 밀착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 우려할 만도 하다. 지난 5월에 러시아 열병식에서 북·중·러 3국 정상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것도 중국의 반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번 열병식에서 김정은에게 꽃길을 깔아주면서 북·중·러 3국 정상의 연대를 과시했다.
이번 열병식에서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과시하며 반미진영의 센터임을 과시했다. 미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에 대항할 수 있는 스텔스기와 극초음속무기, 첨단 무인무기에 더해 미 본토를 타격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공개했다. 북·중·러 3국 연대는 권위주의를 연대를 넘어 핵무장국들 간의 연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연대에 북한이 포함된 것이야말로 김정은이 당 창건 80주년에 자랑할 수 있는 북한 최대의 국가적 치적이기도 하다.
이렇듯 기회는 한반도 밖에 있다. 은둔의 독재국가인 북한조차 깨달은 사실이다. 한국도 중국과 러시아와의 줄어드는 무역에 개의치 말고, 북한과 명목상의 평화체제구축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세계로 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집착하기보다 북한이 포기한 통일정책을 유지하고 이를 국민과 인식을 같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북한조차 세계로 나가고 있다. 다만 북·중·러 3국 정상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의 세계는 좁고 국제질서를 무시하거나 악용하는 국가들뿐이다. 그러나 한국에게 세계는 더욱 넓다. 북한과 중국에 얽매이지 않고 보편적 가치와 규칙에 기반하여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상을 올리고 한·미동맹을 현대화할 때 역내 평화는 물론 통일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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