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는 가자 지구 실상 몰라… 초청할 수도”
네타냐후와 ‘한 몸’ 된 것처럼 팔레스타인 비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나 최근의 중동 정세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언론이 두 사람의 회동을 “힘든 만남”(tough meeting)으로 규정할 만큼 분위기가 험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 역할만 수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영국 정부는 앞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등에서의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이란 조건 아래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대등한 독립 국가로 승인할 수 있다는 방침을 내비친 바 있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헤르초그 대통령은 이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를 방문해 스타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하루 전인 9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잔당을 괴멸해야 한다”며 카타르 수도 도하를 폭격한 터라 두 사람의 대면은 시작부터 냉랭할 수밖에 없었다. 카타르는 오랫동안 영국 보호령으로 있다가 1971년에야 완전 독립을 이뤘으며, 지금도 영국과 동맹 관계를 어어가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헤르초그 대통령을 향해 “이스라엘이 중동의 우리 동맹국인 카타르에서 ‘이슬람 단체의 정치 지도자들을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공습을 강행했다”며 “이번 사안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고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은 중동 지역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핵심 파트너 국가(카타르)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한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중동 지역 평화의 확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폄훼했다.
가자 지구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다. 스타머 총리는 헤르초그 대통령 면전에서 가자 지구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려는 이스라엘군의 작전 강행에 따라 그곳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직면한 식량·약품 부족 등 인도주의적 위기에 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에 대한 정책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대통령이 상징적 국가원수 역할에 그치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따라서 스타머 총리는 이런 얘기를 이스라엘 정부의 실권자인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와 나눴어야지 대통령에게 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헤르초그 대통령은 ‘의례적인 덕담 말고 진지한 정치적 대화는 삼가야 한다’는 관행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이스라엘 정부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먼저 조만간 열릴 유엔 총회를 계기로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나란히 주권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영국 정부의 계획을 비난했다. 그는 “가자 지구가 처한 인도적 상황에 대한 이스라엘 및 영국 정부의 견해차가 양국 간 의견 불일치의 근본 원인”이라며 스타머 총리에게 “영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표단을 보내 진상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공을 가했다.
영국에 앞서 프랑스와 캐나다 같은 다른 서방 주요국도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방침을 내비쳤고, 이스라엘 정부는 그간 네타냐후 총리가 주로 총대를 메고 서방 움직임을 비난해왔다. 그런데 이제 헤르초그 대통령 본인이 직접 ‘필레스타인 주권국 인정 반대’ 입장을 공공연히 설파하고 나선 셈이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강경 우파이자 시오니즘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네타냐후 총리와 달리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노동당 출신 정치인으로 사회민주주의와 가깝다. 과거 중도와 좌피를 아우른 정권에서 건설주택부 장관, 관광부 장관, 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2021년 이스라엘 여러 정파 간의 타협으로 임기 7년의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가끔 네타냐후 내각의 우경화 정책에 쓴소리를 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국내 정치와 거리를 둬 왔다. 하지만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 살해와 인질 납치 등 테러를 저지르자 ‘가자 지구 모든 주민들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네타냐후 정부를 편드는 태도를 보여 이슬람 주민들로부터 분노를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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