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공정·투명성 확보” 설치 확대
일선서에 1000대 가까이 보급 불구
녹화건수는 갈수록 줄어 ‘유명무실’
2024년 5만5000건… 3년새 2만여건↓
수사관 재량 맡긴 탓에 활용 저조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경찰이 수사 공정성·투명성 확보와 인권 보호를 위해 피조사자 진술 영상녹화 제도를 운영 중인 가운데 영상녹화 실시율이 매해 떨어져 지난해 4%대까지 내려앉은 것으로 확인됐다. 진술 영상녹화 시설은 계속 확대돼 지난해 말 기준 일선서에 1000대 가까이 설치됐지만 실시 건수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지침상 체포·구속된 피의자 등 특정 대상에 대해선 진술 영상녹화를 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개개 수사관 판단에 맡겨 놓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8일 경찰청에 따르면 피조사자 진술 영상녹화 건수는 지난해 5만5264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7만9170건, 2022년 7만8108건으로 7만건 후반대에 머물다가 2023년 6만926건으로 2만건 가까이 빠진 데 이어 또다시 한 해 만에 1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 검거건수 대비 영상녹화 실시 비율을 따져봐도 감소세가 완연하다. 2021년 7.0%, 2022년 6.9%였다가 2023년 2%포인트 가까이 빠져 5.1%를 찍었고, 지난해엔 4.6%까지 주저앉았다.
하지만 진술 영상녹화 장비는 그간 매해 확대됐다. 지난해만 해도 관련 예산이 총 6억3900만원 편성됐고 새로 장비 108대가 설치됐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일선서에 보급된 녹화 장비는 982대에 이른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출범 5년차를 맞아 지난달 초 내놓은 ‘수사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에서도 수사 공정성·투명성 확보를 위해 피조사자 진술 영상녹화 시스템 기반을 확충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장비 보급만 늘릴 게 아니라 실시율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아정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은 최근 2024 회계연도 경찰청 소관 세입·세출결산 검토보고서에서 저조한 진술 영상녹화 실시율 문제를 지적하면서 “수사관들의 영상녹화 제도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형사소송법은 사건 관계자에 대한 진술 영상녹화가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고, 경찰 영상녹화 업무처리 지침에는 체포·구속된 피의자, 살인·성폭력·중수뢰(가중처벌 대상 뇌물죄)·선거범죄·강도·마약 등 중요 범죄 피의자, 피의자가 영상녹화를 희망하는 경우 등에 대해 원칙적으로 영상녹화를 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수사관 재량에 따라 임의로 제도가 운영되면서 실시 빈도가 낮은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녹화를 적극 활용하는 수사관도 있지만 어떤 수사관은 어지간하면 안 하려고 한다”며 “수사받는 당사자가 영상기록을 남기는 걸 꺼리는 경우도 있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경찰 내에서는 진술 영상녹화물 처리 절차가 비효율적이라 실시율을 떨어뜨린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수사규칙에서 영상녹화를 한 경우 파일을 CD에 저장해 사건 송치 시 함께 보내도록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CD에 파일을 담아 제작하는 과정이 수사관들에게 번거롭게 느껴져 아예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형사절차를 전자화하면 일부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나 전문위원은 “경찰이 영상녹화 미실시 사유별 통계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면서 “시도청별 상황을 반영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표준화된 업무지침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스템상 영상녹화를 안 한 사유 자체는 기록해 놓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는 통계가 조금 부정확한 게 사실”이라며 “통계를 개선해 실시율을 제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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