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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석별 무대에서 단원들 ‘올드 랭 사인’ 연주에 눈물흘린 국립심포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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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8 06:00:00 수정 : 2025-09-07 22:47:08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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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은 저에게 환상적인 인간적·음악적 모험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삶·일·음악의 방식을 배우며 지냈고, 제 안에 남은 가장 큰 감정은 감사함입니다. 이 시기는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단계였고, 저는 여기서 엄청나게 많이 배웠습니다.”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초대 음악감독이 지난 5일 정기연주회에서 3년 임기를 끝마쳤다. ‘코리안심포니’가 ‘국립심포니’로 새출발한 2022년부터 악단을 이끌어 온 벨기에 출신 세계적 지휘자다. 연주회가 끝난 후 단원은 석별의 아쉬움을 담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했고 실력만큼이나 훌륭한 품성으로 단원들을 매료시킨 이 마에스트로는 오랫동안 눈물 흘렸다.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국립심포니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회견(3일)에서 라일란트는 “어떤 지휘자가 아니라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미래는 여러분(한국)에게 있고, 과거는 우리(유럽)에게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악단의 가장 큰 음악적 변화는 무엇입니까. 라벨 등 프랑스 음악을 집중적으로 선보인 노력은 국립심포니에 어떤 영향을 남길까요.

 

“음악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었는지 제가 직접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그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음악에는 각기 다른 사명이 있습니다. 품질, 정확성, 투명성,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죠. 오케스트라의 임무는 이 모든 것을 소화하는 것입니다.

 

3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국립심포니를 통해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같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연주했습니다. 이는 투명하고 가벼우면서도 음악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프랑스 음악의 특성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브람스와는 아주 다르죠.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음악을 함께 경험한 것은 모두에게 풍부한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이는 저 자신에게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5일 열린 국립심포니 제258회 정기연주회에서 임기를 마친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를 위해 단원들이 ‘올드 랭 사인’을 연주하자 라일란트가 눈물 흘리고 있다. 국립심포니 인스타그램

-3년간 함께 한 국립심포니 단원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고 어떤 조언을 남기고 싶은가요.

 

“당연히 관객만큼이나 단원들도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상황이 다른 프랑스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느낀 가장 큰 점은, 모든 단원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제시간에 모여 마지막 순간까지 200%의 집중력을 유지합니다. 유럽에서는 연주가 끝나기 10분 전쯤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하는데, 한국 단원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습니다.

 

또한 각 단원들이 ‘나의 재능을 어떻게 전체를 위해 잘 사용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연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의 성공보다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것이죠. 유럽은 개인이 어떻게 더 빛날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결국 음악 소리 자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일종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프랑스 연주자와 공동체적인 한국 연주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음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전달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오늘 아침 단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래는 여러분에게 있고, 과거는 우리(유럽)에게 있다.’ 유럽이 수백 년의 음악 전통을 가졌지만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갈 주역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 솔리스트들이 전 세계 콩쿠르를 휩쓸며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을 더해 기술적 능력과 문화적 깊이를 융합한다면, 세상에 영원히 기억될 음악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 국립심포니 예술감독으로서 가장 막중하게 다가왔던 책임은 무엇이며 처음 설정한 비전은 얼마나 달성했나요. 단원에게 어떤 지휘자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엄청난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책임은 신뢰에 보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고 싶었고, 타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목표는 단원들이 자신의 연주를 듣고 ‘내가 이렇게 잘할 수 있었단 말이야’ 하고 스스로 놀라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또한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기여한다는 것이 미미하게 느껴졌지만,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예술가의 비전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이어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슈만으로 시작해 프랑스 작품, 녹음 작업, 유럽 투어까지 많은 것을 함께했습니다.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계 속에서 많은 것을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어떤 지휘자'가 아니라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평등한 음악가이자, 각자의 역할 속에서 전체를 이루는 협력자일 뿐입니다. 저의 멘토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우리 모두는 미래의 유령’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영혼으로 돌아갈 존재이기에, 하루하루를 더욱 겸허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지휘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관객과 교감에 대해 많이 언급하셨습니다. 청중의 반응을 콘서트 중에 어떻게 인지하시나요? 또한 많은 협연자와 무대는 어떻게 기억하는가요.

 

“청중의 가장 아름다운 반응은 아마도 침묵의 밀도에 있을 겁니다. 그 소리 없는 울림은 거의 물리적으로 느껴집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동안, 악장과 악장 사이, 그리고 음악이 끝난 직후의 그 찰나의 정적, 그 강렬함은 박수나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그것은 거의 형이상학적인, 정말 물리적인 경험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모든 협연자는 우리를 다른 세계, 특별한 에너지로 이끕니다. 협연자는 오케스트라에 영감을 줄 책임이 있고, 그 에너지 교환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환상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젊은 한국 연주자들은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을 가져옵니다. 때로는 제가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방식이지만, 그들의 연주에 설득당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실력의 정의입니다.”

 

2일 서울 서초동 국립심포니 연습실에서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마지막 연주회 곡목인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솔직히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즌 계획과 솔리스트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우연히 마지막 곡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작품은 저의 이중적 정체성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원곡은 러시아 피아노곡이지만,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관현악으로 편곡해 두 얼굴을 가진 작품이 되었죠. 이 두 가지 측면이 저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 처음 연주회에서 들은 곡이 바로 이 곡이었고, 무대 위 색소폰 소리에 매료되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 어딘가에 그때 들었던 '전람회의 그림'이 아직도 울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현재 복잡한 정치적 맥락을 가집니다. 마지막 곡인 '키예프의 대문'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러시아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그곳의 복잡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지난 두 시즌 동안 이 곡을 세 번 연주하며 그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이 오케스트라가 여러 질풍노도의 시간을 겪었지만, 앞으로도 오래도록 계속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도 지난 3년은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도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 시기였습니다. 독일어로 '아우프 비더젠(Auf Wiedersehen)'이라고 하죠.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다시 만납시다’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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