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초등학생 유괴미수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가 5일 경찰 브리핑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영상에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경찰은 초기 수사에서 신고된 차량 정보와 실제 범행 차량이 달라 범행 확인이 늦어졌다며 대응 미흡을 인정했다.

◆소리지르며 도망친 초등생… 피의자들은 “장난으로 범행”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오전 언론 브리핑을 열고 범행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처음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회색 차량이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자 일부 학생들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현장을 벗어나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학생은 말을 무시한 채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일부는 겁에 질려 도망쳤다”며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고려해 범행 영상의 세부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미성년자 유괴 미수 혐의를 받는 피의자 3명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31분부터 5분간 서대문구 홍은동 초등학교 2곳 인근에서 총 3차례에 걸쳐 초등학생들을 유인하려 했다. 피해자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 4명으로 확인됐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인 피의자들은 전날 술을 마신 뒤 짬뽕을 먹고 귀가하던 중 차량에서 내리지 않은 채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에게 “귀엽다, 집에 데려다줄게”라며 말을 걸었다. 다행히 학생들이 모두 현장을 벗어나 미수에 그쳤다. 범행은 모두 차량 내부에서 이뤄졌으며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없었다.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아이들이 놀라는 것에 대해 재미 삼아 했다”며 “실제 차량에 태울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운전석에 앉은 대학생 A씨와 조수석의 자영업자 B씨가 주도적으로 범행에 가담했고, 뒷좌석의 대학생 C씨는 “잘못되면 중대 범죄가 될 수 있다”며 친구들을 제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에 이용된 차량은 A씨 아버지 소유로, 홍은동에 거주하는 A씨가 평소 대학교 통학용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3명 모두 범행 당시 마약 투약이나 음주 정황은 없었으며, 동종 전과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A씨와 B씨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이들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5일 오후 결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일회성 장난이 아닌 3차례 범행을 시도한 점과 사회적 불안감 등을 고려해 영장을 신청했다”며 “유사범행 예방을 위해 초등학교 주변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서울서부지법에 도착한 피의자들은 취재진의 “혐의를 인정하느냐”, “실제로 유괴할 의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들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이날 오후 결정된다.
◆허위라더니… 경찰, 초기 수사 미흡 인정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초기 수사의 미흡함을 인정했다. 최초 신고에서 언급된 차량이 흰색이었으나 실제 범행 차량은 회색이어서 수사에 혼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0일 피해 학생 보호자로부터 신고를 받고 인근 CCTV를 분석했지만 유괴 시도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홍은동 소재 초등학교가 1일 가정통신문을 통해 “주말 사이 흰색 차량에 탑승한 낯선 남성 두 명이 아이들에게 접근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 사례가 보고됐다”고 알리면서 언론에 보도되자, 경찰은 이튿날 “전혀 그런 사실이 없었다”며 반박했다. 당시 경찰은 “신고 내용과 관련한 범죄행위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학부모 단체채팅방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 직후 “우리 아이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추가 신고가 접수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경찰은 즉시 강력팀을 투입해 범행 차량 추적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실제 납치 미수 범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3일 오후부터 4일 오전까지 피의자들을 홍은동과 경기 여주시에서 순차 검거했다. 결과적으로 초기 신고부터 검거까지 5일이 걸린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초기 수사에서) CCTV를 확대하거나 다른 각도에서 검토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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