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곳 점검서 행정지도 3% 그쳐
서울·경기·강원서만 시행 적발
세계일보, 대전 학원 2곳 등 문의 결과
“시험 통과해야 등록”… 조사와 달라
교육계 “현실과 동떨어져” 지적
당국은 “중간시험 등 포함 안 돼”
유아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면서 ‘4세·7세 고시’ 논란이 커지자 교육 당국이 처음으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전국 23곳 적발에 그쳤다. 교육계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란 지적이 나온다.

◆‘레테’ 시행 학원 23곳뿐?
교육부는 올해 5∼7월 소위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반일제(4시간) 이상 영어학원 728곳 전수점검 결과 23곳(3.1%)에서 사전 등급시험(레벨테스트) 시행이 확인돼 행정지도했다고 4일 밝혔다.
앞서 교육부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레벨테스트 준비 등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과열됐다는 논란이 나오자 전국 17개 교육청에 특별점검을 요청했다. 유아 영어학원이 신입생을 받을 때 영어 수준을 측정하는 시험을 보는지 등을 전수조사해달라는 것이다. <세계일보 5월15일자 9면 참조>
교육 당국이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점검한 적은 많지만 레벨테스트 실태 파악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계에선 유아 사교육 실태가 드러날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조사 결과는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예상보다 적발된 학원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728개 학원 중 사전 시험을 보는 곳은 3곳(서울 2곳·경기 1곳), 등급 분반 목적 시험을 보는 곳은 20곳(서울 9곳·경기 8곳·강원 3곳)뿐이었다. 서울·경기·강원을 제외한 14개 지자체에선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런 조사 결과와 달리, 이날 서울 소재 유아 대상 영어학원 6곳과 대전 학원 2곳에 문의한 결과 모두 시험을 통과해야 등록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교육부의 통계와 다른 것이다. 전국에 약 70개 분점이 있는 유명 학원은 자체 입학시험에 이름까지 붙여 홍보하고 있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의 백병환 정책팀장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레벨테스트 후기가 많은데 3곳만 입학 목적 시험을 한다는 것이 의아하다”며 “조사방식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통계가 과소집계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교육청이 현장에서 조사한 것이라 신뢰성이 있다”며 “다만 학원에 다니다 교습과정 중간에 시험 보는 학원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단 유아를 받은 뒤 일정 시간 뒤 시험을 보고 반을 나누는 경우 등도 많은데, 교육청마다 ‘입소 전후’에 대한 기준 등이 달라 통계가 제각각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5세반이 아닌 6세·7세반 등으로 중도 입소 한 경우 등은 조사에 포함하지 않은 곳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 A씨는 “아이가 5살부터 놀이식 영어유치원(학원)에 다니다 좀 더 학습 위주인 곳으로 옮기려고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가 ‘재수’ 끝에 붙었다”며 “5세반은 그냥 들어가는 곳도 많지만 2·3년차 반은 대부분 시험을 봐야 하고, 그 학원 초등반에 가려면 또 시험을 보는데 이런 경우가 다 빠진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7세고시’의 경우 초등학생 대상 유명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 예비초등생들이 치르는 시험을 말하는데, 이 시험은 보통 학교 입학 전인 7세 가을∼겨울에 치른다. 교육부는 “유아 대상 반과 초등학생 반을 모두 운영하는 학원의 경우 ‘7세고시’를 치르는지도 조사했다”고 밝혔으나 이번 발표 통계만 보면 예비초등생이 치르는 시험도 대부분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레벨테스트 시행 학원은 상담·추첨으로 선발 방식을 변경하도록 행정지도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사전 레벨테스트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어서 뚜렷한 제재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좀 더 고강도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본질은 과도한 유아 선행교습”
레벨테스트 단속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최근 36개월 미만 영유아 대상의 학교 교과 보습 행위를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영유아에게는 하루 40분 이상의 학교교육과정 교습 행위를 금지하는 학원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지금처럼 유치원 형태로 매일 수 시간 동안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들은 교습을 중단해야 한다.
교육부는 “7세 고시 부작용 근절을 위해 필요한 입법안 검토를 해 나가겠다. 학원법 개정안 등의 국회 법안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소통해 제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강 의원의 법안도 거론했으나 법안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다. 향후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어떤 식으로 규제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침은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강 의원 발의 법안처럼 유치원 형태의 영어학원 교습을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명칭 준수 등 법만 지키면 현재의 유치원 형태 운영도 계속 용인한다는 방침인지’를 묻는 말에 “하나하나 검토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고만 답했다.
백 팀장은 “문제의 본질은 레벨테스트 시행 여부가 아니라 과도한 선행교습이다. 지금 정부는 ‘7세고시’가 이야기가 나오니까 ‘레벨테스트를 잡자’며 그것만 조사하고 있는 건데 이런 식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교육부는 과도한 선행교습 자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조사에선 영어학원의 불법행위들도 대거 적발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번 점검으로 총 260개 학원에서 384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거짓·과대광고 62건 ▲교습비 게시 위반 61건 ▲학원 명칭 표시 위반 56건 ▲교습비 초과징수등 53건 ▲광고 시 명칭 등 미게시 46건 ▲시설위반 25건 등이다. ‘성범죄 등 경력 미조회’도 2건 있었다. 이들 학원은 교습정지(14건), 과태료 부과(70건), 벌점·시정명령(248건) 등의 처분을 받았다.
교육부는 “학원의 위법·부당한 운영에 대한 조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신고포상금 지급 제도를 적극 활용해 ‘불법사교육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되는 민원·제보에 대해 계속 현장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