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국제공조·핵잠재력 강화 고민을
4대 세습 북, 국호서 ‘공화국’ 지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제 중국의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天安門) 망루에서 북·중·러 결속을 과시하며 이재명정부의 대북·외교 정책은 중대 시험대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3자 동석 이후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차량으로 이동한 뒤 진행된 북·러 정상 회담을 통해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도 건재함을 부각하는 장면에도 착잡함을 느낀다.
우리는 과거 “패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며 자중하던 중국의 수사(修辭)는 사라지고 북·중·러 결속을 앞세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부상하는 중국의 자신감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현장도 목도했다. 좌(左)정은·우(右)푸틴의 시 주석이 전승절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오늘날 인류는 다시 평화냐 전쟁이냐, 대화냐 대항이냐, 윈윈이냐 제로섬이냐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며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추세는 막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DF)-61이 첫선을 보이는 등 위협적 군사력을 자랑했다. 김 위원장의 다자 외교무대 데뷔와 1959년 이래 66년 만에 성사된 북·중·러 정상의 톈안먼 동석은 동아시아 정세의 지각변동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다.
위기적 변화에 봉착한 민주자유진영의 리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식은 안이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미국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서도 3자 연대에 대해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을 향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중·러가 세계 최강 미국에 당장 도전장을 낼 힘은 부족하지만, 3자 연대의 부각 자체가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한 압력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경솔한 발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러 외에도 26개국 국가원수 등 대표가 참여한 다자무대를 통해 외교적 공간을 확대하면 한국의 대북 발언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고, 중대한 외교·안보적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이번 김 위원장의 행보, 북·중·러 결착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이제 지정학적, 지경학적으로 북·중·러 연대에 접한 민주자유진영의 최전선이 됐다.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따른 미국의 리더십 약화, 민주자유진영의 결속이 이완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국력과 군사력의 강화, 우호국과의 협력 외에는 해법이 없다는 중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미·일 공조는 물론 호주·뉴질랜드·영국 등 아시아태평양 역내외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호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할 때다. 중·러의 묵인,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맞서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가 기존 명분론에서 탈피해 실질적인 핵잠재력 강화를 위한 고민도 진지하게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 딸 김주애를 동행시킨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4대 세습 계획을 내외에 선포한 것으로 북한 정권이 얼마나 인류 역사 발전의 경로에서 이탈했는지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4대 세습은 왕국을 제외하고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희극적 사례다. 북한은 차라리 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화국’을 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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