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외부인으로 구성된 ‘법관평가위원회’가 법관 인사 평정을 맡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대법원이 “헌법 위반 소지가 높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은 1일 전국 법원장들에게 지난달 29일 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법관평가위원회 관련 의견’, ‘대법관 증원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등을 공유하고 관련 논의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대법원은 조만간 전국 각급 법원의 의견을 수렵하기 위해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민주당 안 관련 사법부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외부인이 법관 평정할 경우 판결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될 우려”
대법원은 더불어민주당이 ‘법관 평가가 투명하지 않다’며 추진하는 법관평가위원회에 대해서도 “위헌 소지가 높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민주당은 법관평가위원회 신설에 관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가 추천하는 5명 △법률가단체가 추천하는 5명 △법원 내부 구성원 5명으로 구성된 법관평가위원회를 두고 법관 근무성적에 대한 평정을 진행한다는 게 골자다.
대법원은 “외부인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법관에 대한 평정을 할 경우 판결 내용 자체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위험성이 있고 위원회의 평가가 인사관리에 반영될 경우 판결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관평가위원회에 15명 중 5명을 국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포함되는 점을 두고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심대한 위협을 끼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일 연방일반법원에서 판사에 대한 직무감독조치가 권한이 없는 자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 그 이유만으로 판사의 독립성이 침해된다는 취지의 판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변호사단체의 법관평가 자료를 인사 평정에 반영하는 부분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에 의한 법관 평가는 재판의 일방 당사자에 의한 평가이므로 소송 승패나 진행의 유불리에 따라 평가가 좌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법관 평가를 할 수 없는 이른바 ‘나홀로 소송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기존 법관인사위원회에 외부인 참여가 전혀 없다는 민주당 측 주장에 대해서도 “법관 연임심사를 하는 법관인사위원회는 법관 3명, 변호사 2명, 법학교수 2명, 각계 전문 분야에서 변호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3분의 2가 외부인”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이 법관평가제도 개선의 예시로든 독일의 ‘평정회의’에 대해서도 “평정의 통일성 확보를 위해 평정권자(고법원장 및 지법원장)들이 모여 평정 초안을 바탕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회의일 뿐”이라며 “외부인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고 짚었다.
◆“대법관 30명 증원, 신중 검토해야”
대법원은 대법관 숫자를 현재의 14명에서 16명 더 늘려 ‘대법관 30명’으로 증원하는 방안에 대해 “사실심 재판역량 약화, 전원합의체 심리의 실질적 제한으로 대법원이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과 법령 해석의 통일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어려워진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사회 각계 및 사법부의 의견을 종합해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상고심의 모습에 대한 방향 설정을 한 이후 그에 부합하도록 대법관 증원 규모와 시기를 정할 필요 있다”면서 “그와 같은 방향 설정 없이 대법관 수만 급격히 증가시킬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불가역적 변화가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시 전문영역별 2개 이상의 합의체를 두거나, 소부의 대표자로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방식은 헌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할 수 없다면 그 자체로 헌법이 예정한 전원합의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헌법이 정한 동일한 절차에 따라 임명된 대법관의 권한에 차등을 두는 것이라면 대법관의 계층화를 의미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장기간에 걸친 순차적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대법관의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될 경우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이들의 후임 대법관을 임명할 때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1년 또는 2년에 1명 또는 2명씩 순차로 증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판결문 공개 확대, 입법 있다면 시스템 마련 가능”
대법원은 ‘판결문 공개 확대’와 관련해선 “미확정 형사판결 등 주권자 국민에 의한 사법 통제, 알 권리 충실 보장을 위하여 추가적으로 전향적 공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판결문 공개 확대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핵심 공약이었다.
대법원은 비확정 형사 판결문 공개에 대해 “피고인의 무죄추정・방어권 침해, 상급심에서 결론이 변경돼도 이미 공개된 피고인 사생활·명예 등이 회복 불가하고 진행 중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입법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8월 이뤄진 법관 85%, 소송당사자 65%가 비공개 의견을 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재판공개의 원칙 및 국민의 알권리에 기초해 형사 미확정 판결도 전면 공개하는 입법정책적 결정이 있을 경우 공개 시스템 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판결문 확대에 수반되는 개선점을 반영하기 위해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 열람에 드는 수수료를 면제하자는 취지의 법안에 대해 “1건당 비실명화에 드는 비용은 8000원”이라며 “현재 판결서 열람 수수료 수입은 판결서 열람을 위한 예산에 미치지 못하고, 건당 비교하더라도 1건당 수수료는 비실명화에 드는 비용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현재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 판결문을 열람할 경우 수수료 1000원이 부과된다.
◆“현 대법관추천위, 대법원장 재량 개입되지 않아” 반박
대법원은 민주당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개편안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민주당은 “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위원회에 비법조인의 비율을 현저히 끌어올리겠다는 개편안을 추진 중인 상황이다.
대법원은 “현 위원회 위원 10명 가운데 법관은 총 3명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위원인 법무부장관, 대한변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은 대법원장의 영향력 하에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장이 추천위에 후보자를 제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2018년 추천위원회 규칙을 개정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대상자 제시권을 전격 폐지했으며 현재는 대법원장의 재량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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