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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 vs 효율화…다시 도마 위에 오른 ‘공공의료’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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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9 09:00:00 수정 : 2025-08-31 12:52:28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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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북부 ‘공공의료원’ 개원 가속…“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
경기도의료원 의정부·포천병원 임금 체불…道에 출연금 확대 요청
의정부병원 이달 월급 85%만 지급…200여명 1억3000만원 못 받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지난 대선에서 ‘공공의료’ 다시 화두로
성남시의료원 대학병원 위탁안 놓고 마찰…성남시민단체들 규탄·반대
이준석 “3400억 쓰고 200개 병실 놀려…李 전형적 치적 쌓기” 비판
성남시의료원, 李 대통령 정치입문 동기…공공의료 확산 앞두고 재점화

“2013년에 그곳을 떴습니다. 160명의 환자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전 의료기관이 파괴되는 걸 봤습니다. 수만 개의 댓글도 봤습니다. ‘혈세 낭비’, 어마어마한 적자를 지적하면서 불친절하고 낡았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인 올해 6월 성남시의료원 앞에 있는 주민교회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드라마 ‘라이프’의 극 중 흉부외과 의사 주경문(유재명 분)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자신이 일하는 대학병원의 모든 의사가 모인 자리에서, 경남 토박이인 자신이 나고 자라고 공부한 김해의 한 공공의료원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드라마는 의료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대기업 재단과 돈을 뛰어넘는 생명의 가치를 우위에 둔 일부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병원 내 권력을 둘러싼 ‘직장인’ 의사들의 암투가 축을 이룹니다.

 

그런데 극적 재미를 떠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전히 낡고 적자를 이어가는 운영이지만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장면입니다.

 

성남시의료원 전경. 성남시 제공

◆ 잇따른 도의료원 임금 체불…출연금 확대·은행채 등 언급

 

경기도가 동북부 지역에서 공공의료원 추가 개설을 위한 ‘속도전’에 들어간 가운데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이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도내 공공의료원 경영의 효율화, 내실화가 도마 위에 오른 겁니다.

 

사실 재정 적자는 경기도의료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공공의료’가 붙은 거의 모든 시설이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161억원, 제주는 151억원의 차입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는 원활한 공공의료 운영을 위해 도의회에 지난해 162억원의 2025년도 예산을 요청했으나, 이 중 86억원이 삭감됐습니다. 최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청했는데 이마저도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28일 경기도의료원 등에 따르면 의정부병원은 이달 20일 전체 310여명의 직원 가운데 200여명에게 월급의 85%만 지급했습니다. 전체 직원의 3분의 2가량이 이달 월급의 15%를 받지 못한 겁니다. 밀린 월급의 총액은 1억3000만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북부지역 공공의료원 설립을 발표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경기도 제공

의정부병원 노조 관계자는 “만성적자가 이어지다 결국 임금 체불에 이르게 됐다”며 “임금 체불은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도의료원 측에서 도의 2회차 추경에 의정부병원을 포함한 도의료원 산하 5개 병원의 올해 부족 예산 113억원 반영을 요청했는데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의정부병원 노조는 임금 지급이 계속 미뤄질 경우 쟁의행위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도는 29일까지 이 문제를 해소할 방침입니다. 도의료원 산하 포천병원도 이달 20일 임금을 체불한 뒤 닷새가 지나서야 월급을 지불하는 등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경영이 원활치 않아 보입니다. 포천병원은 이달 20일 6년 차 이상 직원들에게 급여의 80%만 지급했다가 닷새가 지나서야 가까스로 전액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연금 확대만이 도의료원 산하 병원들의 경영난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지만,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공공의료원의 경영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제입니다. 현재 도는 남부지역에서 경기도의료원 수원·이천·안성병원 3곳을, 북부지역에선 의정부·파주·포천병원 3곳을 운영 중입니다.

 

경기 북부지역 종합병원과 의료취약지. 경기도 제공
경기도의료원 현황. 연합뉴스

◆ 공공의료 확충 ‘속도전’…열악한 도의료원 경영이 발목 잡나

 

수원·의정부·파주·안성·포천의 5개 병원의 경우 올해 운영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의정부·포천병원은 각각 25억원을 훌쩍 넘는 수준입니다. 퇴직연금 적립은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기도 역시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채 사용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미봉책입니다.

 

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불거집니다. 도는 남양주·양주·동두천 등 동북부 시·군 6곳의 기대수명이 도 평균보다 낮고,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이유를 들어 의료격차 해소에 나섰습니다. 동북부권 혁신형 공공의료원 건립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기도의료원 산하 병원은 모두 8개로 늘지만, 시·군이 부지를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건립비는 수천억원에 달합니다.

 

경기 북부의 의료 인프라 개선이 시급한 것은 사실입니다. 상급병원이 없고 양주·동두천 등 4개 시·군에는 아예 종합병원도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임금 체불 사태는 공공의료원 운영의 효율화라는 화두를 다시 던졌습니다. 

 

공공의료는 통상 수익보다 생명과 안전을 먼저 따집니다. 내실을 다져야 하는데, 그 기준점을 두고 늘 논란이 일어납니다.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연합뉴스

‘망가지고 찢긴’ 성남시의료원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난 6·3 대선을 앞두고 홍역을 치렀습니다. 당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성남시의료원을 방문해 빈 병실들을 둘러보며 “(공공의료원의) 운영 성과가 확인되기 전까지 전국에 확대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생각은 위험하다”고 공격했습니다. “3400억원을 쓰고 200개 병실을 놀린다”며 “전형적 치적 쌓기”라고 비판한 겁니다.

 

신상진 성남시장의 대학병원 위탁(민영화) 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논란에 휩싸였던 성남시의료원은 위탁 안 실행이 물 건너간 분위기입니다. 여전히 보건복지부 서랍 속에 머물며 안갯속에 빠졌습니다.

 

◆ 성남시의료원은 他山之石…“李 대통령, 정치입문 동기”

 

성남시의료원은 2020년 7월 전국 처음으로 주민 발의로 추진돼 500병상 규모로 건립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시장 당시 1호 공약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시범 운영됐고, 이후 공식 개원했으나 경영 악화로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여전히 의료진 확보가 힘들었고 진료 공백, 의료손실 등으로 대학병원 위탁 운영안이 힘을 얻는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 이곳의 연간 손실은 400억~500억원대로 시는 운영을 위해 2022년 265억원, 2023년 215억원, 2024년 413억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올해에는 484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부족한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커 보입니다.

 

성남시의료원 대학병원 위탁안을 발표하는 신상진 성남시장. 성남시 제공

그래서 성남시는 대학병원 위탁 안의 이유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과 취약계층 의료사업 강화를 내세웁니다.

 

반면 성남지역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성남시의료원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역할을 했으나 윤석열 정부 당시 운영지원이 축소돼 어려움을 겪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들은 원장 채용이 미뤄지는 등 경영까지 방치됐다고 주장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코로나19 전담병원, 치료가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치과 진료, 발달장애인을 위한 행동발달증진센터,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 등 성남시의료원이 공공병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봅니다. 

 

성남시가 공개학 성남시의료원 운영 실태. 성남시 제공

성남시의료원 출범을 정치 입문 동기로 내세우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복지부 역시 위탁 안에 쉽게 찬성하기 어려운 입장이 됐습니다. 아울러 민간위탁을 위해선 기존 시의료원 의료진과 직원의 구조조정이 예상돼 노동권이 강조되는 현 정부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김동연 지사는 말했습니다. “공공의료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의료서비스를 상업적이거나 민간 병원처럼 할 수 없는 게 공공의료다.” 아주 오랜 기간 공공의료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지막 보루로 보는 입장과 민영·효율화를 앞세우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섭니다. 

 

언제쯤 이 지루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새 정부 들어 공공의료는 새로운 실험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진일보한 논의의 장 역시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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