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신임관계 없고… 효용 미침해”
대법, 무죄 취지로 원심 파기환송
남의 땅에서 수년간 과일을 몰래 경작해 수확했더라도 횡령죄나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절도·횡령·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10월부터 1년간 B씨 소유 경기 시흥시 5244㎡(약 1580평) 땅에 무단으로 사과나무 40그루를 심어 사과 240개를 수확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1999년부터 해당 토지에서 배추, 무, 고구마 등을 몰래 재배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2008년 9월 부친으로부터 땅을 상속받은 뒤 외국에 거주하다가 2022년 10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A씨에게 “더 이상 땅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A씨는 사과나무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분쟁 중에도 사과를 수확했고, 결국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 1심은 A씨의 절도죄를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A씨가 현실적으로 사과나무를 점유한 것으로 보고 절도죄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2심은 사과나무 소유권이 B씨에게 있다며 횡령죄와 재물손괴죄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A씨가 2021년 10월 수확한 사과 80개 부분에 대해선 재물손괴 혐의가, 2022년 10월 수확한 사과 160개에 대해선 횡령 혐의가 인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횡령죄와 재물손괴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횡령 혐의에 대해 “A씨가 B씨로부터 이 사건 토지의 점유와 사용을 중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두 사람 간 위탁신임관계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피해자 소유의 사과나무에서 무단으로 사과를 수취했더라도 이로 인해 피해자가 사과나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뿐, 사과나무의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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