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군관들 서슴없이 자폭…
생 최후에도 양심에 떳떳한 선택”
자폭한 군인들 영웅화하며 선전
유족들은 영정 쓰다듬으며 통곡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로 잡힐 위험 등에 빠지면 자폭한 군인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의 실제 전투 모습과 생활상을 담은 20여분가량의 영상물을 지난 22일 방영했다. 영상은 “이 전장에서 세계 그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영웅적 희생정신이 탄생했다”며 자폭한 군인들의 신원과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영상에 따르면 북한군 김학철(32)은 “적 무인기 타격에 쓰러진 자기를 구원하러 오는 전투원들에게 ‘중대의 전투 임무를 수행해달라’고 외치며 자동 보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리광은(22)은 “부상당한 자기를 구원하러 오던 전우들이 적탄에 쓰러지자 자폭을 결심하고 수류탄을 터쳤으나 왼쪽 팔만 떨어져 나가자 오른손으로 다시 수류탄을 들어 머리에 대고 영용하게 자폭”했다.
윤정혁(20)과 우위혁(19)은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구출하던 중 중상을 당하여 적들의 포위에 들게 되자 서로 부둥켜안고 수류탄을 터뜨려 영용하게 자폭”했다고 북한 영상물은 전했다.
조철원 소대장과 11명의 전투원은 “6차에 걸치는 적의 반공격 격퇴 과정에 온몸에 심한 부상을 입고 총탄마저 떨어지자 무선대화기로 포 사격을 호출한 다음 ‘위대한 나의 조국이여 번영하라!’고 외치며 전원 자폭”했다. 조철원은 구체적으로 “조국을 위하여, 승리를 위하여! 포 사격을 나에게로! 김정은장군 만세!”라고 외쳤다고 북한 영상물은 밝혔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될 상황에 빠지면 ‘김정은 장군’을 외치며 자폭한다는 국가정보원과 우크라이나 당국의 정보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국제사회에선 이를 두고 북한이 파병 사실을 숨기고 내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군인들에게 투항해 포로로 잡히지 말고 자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는데, 북한은 이를 자신들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기며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자국민 보호 의무와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관점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 쿠르스크주에 1만5000명가량을 파병했는데, 포로로 생포된 인원은 2명 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사자 유족들을 불러 모아놓고 군인들의 자폭에 대해 “양심에 떳떳한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지휘관·전투원과 전자사 유족을 초청하고 개최한 ‘국가표창 수여식’에서 “해외군사작전에서 수백 수천의 영웅들이 나왔다”며 “(군관들이) 시신도 남길 수 없는 자폭의 길을 서슴없이 택하고 자기 지휘관에게로 날아오는 흉탄을 기꺼이 막아나선 사실은 나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고 연설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장병들이) 생의 최후와 직면한 시각에조차 자기 의무에 충실하고 양심에 떳떳한 선택을 할 줄 아는 도덕성도 하나같이 훌륭했다”며 “동무들을 통해 전군장병들의 정신도덕적품격이 어떤 높이에 있는가를 재확인하게 된 것이 제일로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 역시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파병 시점까지 군인들의 가족들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은 것으로도 보인다.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영상물 내레이션에 나온 “이역만리 전장으로 떠날 때 사랑하는 부모·처자의 바래움(배웅)도, 성대한 환송 의식도 없었다”, “참전 소식을 아는 사람조차도 많지 못했다”는 내용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군 일부와 전사자 유족들이 참석한 국가표창 수여식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전사자 유족들은 행사장에 설치된 아들·남편의 초상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맞댄 채 통곡했다. 전사자의 자녀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영정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장면을 김 위원장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지켜보는 모습도 조선중앙TV에 송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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