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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은 왜?… 180도 달라진 대일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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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3 09:00:00 수정 : 2025-08-23 10:16:35
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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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건 내 개인 소유물 아냐…
국정 책임자 입장서 日은 중요한 존재

과거사 문제 있지만 협력할 부분도 많아
양국 모두의 이익 찾는 게 나의 할 일 ”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최악의 외교 패착이자 국치다. 국가 자존심을 짓밟고 피해자 상처를 두 번 헤집는 계묘늑약과 진배 없다.”(2023년 3월, 윤석열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이른바 ‘제3자 변제 해법’을 내놓자)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일본은 적성국가. 일본이 군사대국화할 경우 가장 먼저 공격대상이 될 곳은 한반도임이 자명하다.”(2016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반대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이카와 쇼이치 요미우리신문그룹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대통령 SNS

일본 언론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대일 강경파’로 규정할 때 단골 소재로 삼던 발언들이다. 이 대통령이 대선 기간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내세우며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는 말까지 했어도 일본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한 일본 외교관은 이 대통령이 6·3 대선을 통해 당선되자 마이니치신문에 “정권 초기에는 유화 자세로 나오겠지만 대일 강경의 본성이 점점 드러날 것”이라고 했었다.

 

이 대통령이 집권하면 한·일 관계가 다시 격랑에 빠질 것이라는 일본 측 우려는 이제 점점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캐나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날 때 상석을 양보하며 배려하고,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동맹국인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하기로 한 점 등이 영향을 줬다.

 

21일 요미우리신문에 게재된 인터뷰는 결정타였다. 이 대통령은 한·일 간 최대 쟁점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2023년 이른바 ‘제3자 변제 해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시바 총리 보좌관을 맡고 있는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많은 일본 국민이 이 대통령의 자세를 우려해왔는데, 이번 (인터뷰) 발언은 불안을 불식시킨 것 아닌가”라며 반색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대통령의 대일관은 무슨 계기로 달라진 걸까. 답은 이 대통령이 직접 내놨다. 요미우리가 인터넷에 올린 인터뷰 요약본을 보면, 이 대통령은 “사람이 바뀐 게 아니다”라며 “야당 시절에는 싸울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 내리는 정치적 판단이 야당 시절과 지금처럼 국정을 맡고 있을 때는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이렇게 부연했다.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한국도 일본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양국 사이에는) 분명 역사 문제가 있고 과거 경제·군사적인 측면에서 대립하기도 했지만 거기에 구애될 수만은 없다. 경제·사회·문화·환경 등 협력해야 할 부분도 많다.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발굴해 협력 가능한 분야를 넓혀가야 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이카와 쇼이치 요미우리신문그룹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대통령 SNS

야당 대표 시절 을사늑약에 빗대 강하게 비판했던 제3자 변제 해법을, 지금은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은 “국가라는 것은 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개인적 신념보다 국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도 국민이 선택한 국가의 대표이고, 그들이 합의해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을 내가 뒤집을 수는 없다”며 “국가적 신뢰라는 것도 있다. ‘아, 저 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합의를) 뒤집는 구나.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국가적 손실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책 일관성이나 신뢰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국민과 피해자, 유족 입장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면서 과거사 문제에 관한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두 가지는 우리 국민으로서 매우 가슴 아픈 주제임이 분명하다. 일본에는 내부적으로 사정이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인정하고,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접근법이 훨씬 중요한 것 아닌가. 현실적인 배상은 부수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제적인 측면이 전면에 드러나니 마치 두 나라가 돈 문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고,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변질되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이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가 해소되기는커녕 문제를 키웠고, 피해자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으로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일 텐데, 사실을 부인한다거나 피해자에 대해 가혹한 태도를 보였다. 근본적으로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놓고 자민당 오노데라 이쓰노리 정무조사회장은 추가 사과 요구라고 여긴 듯 “역사 문제의 재협의를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입장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한국 지도자로서 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라며 “이 대통령이 (반발을 고려해야 하는) 내적 위험성을 안고 대일 외교에 임한다는 점을 일본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대통령 인터뷰와 관련 기사를 9개 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한 요미우리는 22일도 사설을 통해 “한·일 관계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징용공(한반도 출신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 소송 문제 해법을 제시하면서 극적으로 개선됐는데, 이재명 정권이 과거사 문제를 다시 꺼내드는 것 아닌가 하는 경계감이 뿌리깊었다”며 “이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분명한 말로 일본 측 우려를 불식하려고 노력한 점을 평가하고 싶다”고 했다.

 

사설은 이어 “그는 동시에 한국 국민의 감정에 대한 배려를 일본 측에 촉구했다”며 “양국 모두 서로 이해를 높여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관계가 악화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을 쌓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23일 일본을 찾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전향적인 대일 접근법을 들고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 사이에서 어떤 성과물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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