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에 기본소득을 제공할 경우 노동시장 참여는 소폭 감소하는 반면 여가 시간은 크게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기적인 생활 안정에는 기여했지만, 고용의 질 향상이나 장기적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현금성 복지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World Congress of the Econometric Society)에서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한 기본소득 실험 결과가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기본소득 받은 그룹, 소득과 근로시간 모두 줄었다”
오픈리서치(OpenResearch) 연구진은 2020년 10월부터 3년간 미국 일리노이주와 텍사스주의 저소득층 1000명을 대상으로 매달 1000달러(약 140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대조군 2000명에게는 월 50달러를 지원하며 양 그룹의 변화를 추적했다.
22일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받은 실험군의 연간 총소득은 대조군보다 약 2000달러 줄었다. 노동시장 참여율도 3.9%포인트 하락했다. 주당 근로 시간은 1~2시간 감소했다. 배우자 역시 유사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여가 시간은 크게 늘었지만 해당 시간이 교육 투자나 재취업 준비 같은 생산적 활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노동 공급 감소는 뚜렷했지만 이를 대체할 생산적 행위는 관찰되지 않았다”며 “기본소득의 긍정적·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서울시 ‘디딤돌 소득’도 유사한 양상 보여
같은 세션에서 발표된 서울대학교 이정민 교수 연구팀의 ‘디딤돌 소득’ 시범사업 분석도 유사한 결론을 담았다.
해당 사업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재산 3억2600만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구 결과 총소득과 소비지출은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노동소득 증가율은 낮아졌고 고용 개선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정신건강 지표는 개선돼 현금성 복지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경제 현실은 바뀌어도 인식 변화는 더디다”
현금성 복지가 체감 효과나 인식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임란 라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 연구팀은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의 농촌 1만5000가구에 약 86만원 상당의 자산 또는 현금을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수혜 가구의 경제적 상황은 개선되고 지역 내 불평등도 완화됐다. 정치적 태도나 사회적 인식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은 “빈곤 완화 정책이 경제 현실은 바꿀 수 있어도 사회적 인식 전환은 훨씬 더디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현금만으로는 부족…다층적 복지 설계 필요”
이들 실험은 공통적으로 현금성 지원이 단기적인 소득 안정과 소비 진작에는 효과적이지만 노동 의욕 저하, 고용 정체, 생산성 개선 미흡 등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재정 여건과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정교한 정책 설계, 그리고 현금 지원을 교육, 재취업 훈련, 보육·의료 서비스, 정신건강 지원 등 다층적 복지 체계와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경제 전문가는 “기본소득 실험은 생활 안정과 소비 활성화에 분명히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장기적인 고용 확대나 생산성 향상으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의 실질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수혜자의 인식 변화와 사회·문화적 요인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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