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협상에서 ‘코리아 패싱’ 막아야
‘日과의 과거 약속 존중’ 올바른 결단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 3단계 비핵화 구상을 밝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결을 시작으로 축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비핵화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일본 대학 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90기)에 근접한 수준이다. 미사일 기술도 급속히 발전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갖추고 있다. 이런 북한이 과연 한국의 비핵화 요구에 순순히 응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구상을 실천에 옮길 방안에 대해 이 대통령은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적극적인 남북 대화를 통해 핵 폐기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현재 북한은 한국을 ‘외교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무장화의 급진적 확대’까지 주장했다. 비핵화는커녕 더 많은 핵탄두를 만들어 한국 등 주변국들을 위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도 ‘남북 대화를 통해 핵 폐기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심각한 것은 북핵과 관련해 우리가 ‘동결’, ‘축소’ 같은 표현을 쓰는 순간 국제사회에 ‘한국 정부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란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핵무기 동결 또는 축소 약속을 받아내는 대신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스몰딜’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고, 북·미 협상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과거 문제를 무시할 수 없지만 경제·문화·환경 등 협력해야 할 분야도 많다”고 했다. 특히 “국가로서 한 약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1965년 한·일 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을 뛰어넘는 새 공동 선언도 희망했다. 북·중·러 밀착으로 한반도 안보가 위태로운 가운데 한·일 관계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내일 열릴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 등에서 한층 전향적인 태도로 한국의 호의에 화답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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