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이세돌/ 웅진지식하우스/ 1만8800원
‘인류 최초 1승’.
전직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2016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3연패 이후 4국에서 0.007%의 확률을 뚫은 ‘신의 한 수’로 알파고를 이겼지만, 이 대국을 계기로 “내가 알던 예술로서의 바둑은 끝났다”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 그가 ‘반상 위의 전략’을 내세워 삶의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냈다.
“바둑을 두면 수읽기를 비롯해 형세 판단, 승부수, 시간 공격 등 반상 위의 전술이 인생의 이치와 닿아 있을 때가 많았다. 위기를 한 번의 승부수로 돌파할 것,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수를 둘 것, 그리고 그 수에 책임을 질 것, 지나친 신중함은 독이 된다는 것 등이 그렇다.”(9쪽)
가로 19칸, 세로 19칸으로 이루어진 바둑판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펼쳐진 고독한 탐구의 깊이는 깊었다. 이는 △끝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돌 하나에도 체면이 있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싸움도 존재한다 △명확하지 않다면 멈추는 게 낫다 △상황을 바꿀 수 없어도 내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슬럼프는 내 안의 기준선이 무너질 때 온다 △넓게 보되 가까운 것을 놓치지 말 것 △수많은 오수가 쌓여야 정수가 나온다 △인생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내 돌은 내가 놓아야 한다 △때론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등 책의 목차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게임과 달리 인생의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세돌은 그러나 “정답이 없는 시대일수록 바둑이 인생에 전하는 교훈은 더욱 명확해진다고 생각한다”며 “불리할 때는 두어야 할 수가 명확해지고,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상황을 돌파할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프로 바둑 기사라는 직업인으로서 겉으로는 무쇠 같아 보였지만 흔들렸던 마음을 전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괜찮아”라며 토닥이는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과 흔들림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다잡아 나가고 이겨내는지에 대한 단호함이 담겼다.
“바둑의 세계에는 ‘미생’과 ‘완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완생은 두 집을 확보해 더는 죽지 않는 안정된 상태를 뜻한다. 반면 미생은 아직 살아 있지 않아 위험한 상태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기에, 완전함보다는 더 큰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완생은 안전하지만 리턴이 작고, 미생은 불완전하지만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69쪽)
인생의 수많은 파도와 흔들림을 겪은 사람으로서 어른들이 젊은 세대에게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도 제시한다. “간섭하지 말자. 도와주고 싶다면 최소한의 간섭으로 그들이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가장 진실한 도움이다”라고.
알파고와의 대국 계약 과정과 당시의 심경, 대국 제한 시간이 정해진 이유 등 모두가 궁금해하는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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