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잭슨 폴록의 그림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강한 영감을 받은 단편 소설을 쓰곤 했는데, 한국의 1세대 환경운동가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폴록’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다.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떤 그림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큰삼촌이 일하는 극장으로 가 삼촌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곤 했다. 삼촌은 춘천 시내에 지금도 그 자리가 남은 극장에서 영화 간판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사실 너무 어려서 삼촌 성격이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엄마 말로 그는 꽤나 불안정했다고 한다. 어쨌든 삼촌은 늘 커다란 배우들 얼굴 앞에 서 있었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그때의 얼굴만 기억에 남는다.
글 쓰는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도 꽤나 불안정한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면 불안정한 마음이 급속하게 더 깊이 추락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에드 해리스가 감독과 화가 잭슨 폴록을 연기한 영화 ‘폴록, 2001년’을 봐도 그는 늘 불안에 시달리고 자제가 되지 않고 몸으로도 표현된다. 식사 중에 온몸을 떨며 접시를 포크로 내리찍던 장면이 생각난다. 평론가들로부터 문학에서나 통할 초현실주의를 그림으로 한다고 비난받으며 공업용 에나멜페인트를 면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고 또 떨어뜨리던 잭슨 폴록.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진실이다.
이번에 잭슨 폴록의 그림 ‘넘버8, 검은 흐름(black flowing), 1951’을 보았다. 흰색 면 캔버스 위에 검은 에나멜페인트로 그린 그림이다. 한참 드리핑 회화로 주목을 받던 폴록이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전시 설명이 있었다. 이 그림에서 동물의 형상이 보인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그림 제목처럼 검게 흐르는 불안의 모습을 보았다. 다음에 다시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볼 때까지, 한동안 이 그림의 여운을 생각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 듯하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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