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그제 서울남부지검이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에서 확보한 돈다발 관봉권의 띠지를 폐기한 데 대해 진상 파악 조치를 내렸다. 법무부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며 감찰을 비롯한 모든 조처를 하라고 대검에 지시했다. 대검 감찰부도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감찰에 들어갔다. 남부지검은 직원 실수로 관봉권 띠지 등을 폐기했다고 해명했다는데 석연치 않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앞서 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부는 지난해 12월 전씨 자택을 압수수색해 1억6500만원어치 현금다발을 확보했다. 이 중 5000만원어치 신권은 한국은행이 비닐로 밀봉 포장한 관봉권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사흘 후인 2022년 5월 13일 한은이 검수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시중은행은 한은 관봉권의 밀봉을 해제해 신권만 고객에게 지급한다. 그러니 개인이 관봉권을 접하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정부기관의 공금이나 특수활동비, 대기업의 자금 집행 등에 사용되는 게 보통이다. 윤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에게 선거·인사 등 각종 청탁을 넣고, 불법 정치자금을 챙긴 의혹을 받는 전씨가 어떻게 관봉권을 수중에 넣었는지 추적해야 하는데도 띠지 폐기로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니 어이가 없다.
관봉권 띠지엔 현금을 검수한 날짜와 시간, 담당자 코드 등 출처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다. 돈다발 흐름을 추적하기 위한 기초 자료다. 그런데도 금융범죄 수사 중점 검찰청으로 돈 출처를 밝히는 데 이골이 났을 남부지검에서 실수로 폐기했다고 하니 믿을 수 있는 일인가. 게다가 남부지검 지휘부는 이런 사실을 지난 4월에야 인지해 대검에 보고했고, 이후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내부 감찰을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은 대표적인 친윤(친윤석열) 검사인 만큼 조직적인 증거 인멸 의구심마저 든다. 전 정부 검찰은 김씨에 대한 부실 수사로 수차례 지탄받지 않았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어제 이를 두고 “검찰이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검찰 해체는 검찰 스스로 하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추석 전 검찰개혁 완수’를 고집하는 정 대표가 이번 사건을 빌미 삼아 졸속으로 관련 입법을 밀어붙일까 우려된다. 검찰개혁은 “국민께 충분히 내용을 알리는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 말처럼 국민, 야당과의 공감대부터 넓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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