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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금수저…아버지 직업 알려지자 난리 난 스타 “집에 일하는 사람만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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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1 16:00:00 수정 : 2025-08-21 16:13:28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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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이성미와 자녀), 이성미 인스타그램

1980년 지금은 폐국이 된 방송국 TBC의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개그우먼 이성미. 특유의 아담한 체구와 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각종 예능의 MC로 활약하며 인기 여성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창 상승가도를 달리던 2002년, 1남 2녀의 엄마였던 그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모든 활동을 접고 홀연히 캐나다로 떠났다. 이후 캐나다에서 세 아이의 양육과 이민 컨설팅 일을 하며 터를 잡고 정착하는 모습으로 점차 연예계와 멀어지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던 2009년 7년 만에 귀국한 그는 곧바로 방송에 복귀, 여러 예능에 MC와 패널로 출연하며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성미와 김학래(TV조선 ‘두 번째 서른’, ‘스타다큐 마이웨이’)

이성미는 1988년 당대 최고의 가수 김학래와 스캔들이 있었다. 당시 이성미는 김학래의 아이를 가졌으나 아버지의 극심한 결혼 반대로 이별을 맞아야 했다. 결국 혼자 아들을 출산한 이성미는 이후 힘겨운 미혼모의 삶을 살았다. 훗날 현재의 남편인 조대원 대표와 결혼하게 된 이성미는 아들을 조 씨의 호적에 입적시켰다.

 

스캔들 상대였던 가수 김학래는 개그맨 김학래와 동명이인으로 1979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방송계에 입문했다. 김학래는 1980년대 후반까지 6집의 앨범을 발표하며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을 4회나 수상하고 가요톱텐 골든컵을 거머쥘 정도로 잘나가던 인물이다. 이성미와 헤어진 김학래는 1990년 일반인 박미혜 씨와 결혼해 독일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다가 2011년 귀국해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성미는 과거 무릎팍도사를 통해 “아들을 혼자 키우던 시절,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서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고 살았다”라고 전하며 미혼모 시절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독한 고통이었지만 먹고사는 문제로 다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엄마의 힘이란 위대하다”라고 밝혔다.

가족사진(남편 조대원 씨와 자녀들), 이성미 인스타그램

지금의 남편 조대원 씨와는 스캔들 사건 이후 기자 대 연예인으로 만났다. 이성미의 루머를 취재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간 조대원 기자를 매몰차게 돌려보냈는데, 며칠 뒤 기사를 좋게 썼다며 다시 찾아온 것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남편은 세 번째 만남에서 이성미에게 청혼했고, 네 번째 만남에서 결혼 날짜를 잡아 왔다. 조대원 씨는 현재 웰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이성미는 최근 자신의 안타까운 가정사를 고백해 또 한 번 대중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지난 9일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희극인 이성미 1화(대한민국 1호 코미디언 이성미!)’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해당 영상은 21일 현재 4만4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

송승환은 이성미의 유년 시절을 언급하며 굉장히 부유한 집안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이성미는 “맞다. 다른 집이 7형제, 8형제 그럴 때 저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라며 “진짜 잘 살았다. 어마 무시했다”라고 인정했다.

 

이성미는 “당시 아버지가 전봇대 사업을 하셨다”라고 알리며 “전봇대에 사용하는 나무를 납품하는 일을 하셨는데, 전국에 있는 전봇대를 거의 다 세웠다”라고 전해 재력을 실감케 했다.

 

이성미는 “1960년대였는데 집에 자가용이 2대 있었고 일하는 사람만 5명이었다. 피아노, 전축, 텔레비전, 냉장고는 물론 에어컨까지 있을 정도였다”라고 언급했다. 더불어 “보광동 뒤 부촌 도둑놈촌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기사 아저씨가 학교까지 늘 데려다주시고 사립초인 동북초를 다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굉장히 극성맞으셔서 창피했다. 치맛바람이 장난 아니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지금 생각해 보면 사립초도 돈으로 들어갔다”라면서 “입학시험을 볼 당시 글씨도 못 쓰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시험도 금방 치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 엄마가 학교에 피아노 교실을 만들어줬더라. 그래서 입학하게 된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

이성미는 숨겨왔던 가정사도 공개했다. 그는 “나중에 알았는데 친엄마가 아니라 새엄마였다”면서 “친엄마는 100일에 떠났더라. 100일 사진을 보면 엄마 없이 고모부가 나를 안고 있고, 엄마 사진은 3~4살 때부터 있어서 늘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새엄마였던 거다”라고 밝혔다. 그는 “나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친엄마인 줄 알고 살았다. 가끔 엄마 친구들이 와서 ‘낳은 자식도 아닌데 참 잘한다’라는 소리를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성미는 “13살 때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새엄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무 전봇대가 시멘트 전봇대로 바뀌면서 아빠가 새우 양식 사업을 시작했는데 폭삭 망했다”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성미는 “집에 빨간 딱지가 붙고 그때부터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남의 집 문간방에 들어가 살면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어린 나이에 ‘인생이 덧없다’라고 생각했다”라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한편 이성미는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자궁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당시 이성미는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친엄마와 이별하고 새엄마와 살게 됐다고 밝히면서 돌아가신 새엄마를 추억했다. 그리고 이성미 본인 또한 막내딸이 13살이던 시절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술만 12번을 했다고 전하며 그 때문에 온몸이 흉터와 칼자국이라고 고백했다. 다행히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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