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 급제동 불구 사고 못피해
李대통령 경고 일주일 만에 사고
전문가 “현장 안전관리 소홀
대피 신호체계 오작동 가능성”
코레일 5년간 10명 산재로 숨져
19일 오전 경북 청도 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구간 철로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측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거의 연일 산업재해 근절 및 기업들 엄단에 관한 대책을 주문하는 상황에서 공기업에선 처음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레일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2명이 죽고 5명이 중경상을 입은 이번 사고는 작업자들이 약간만 주의만 기울였어도 인명 피해가 없었을 인재였다.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제1903호)가 사고 구간으로 진입할 당시 근로자들은 최근 폭우로 생긴 선로 피해를 점검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1903호가 전기 기차였던 탓에 소음은 거의 없었고 해당 근로자들은 안전요원 없이 작업에만 몰두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소방 관계자는 현장 브리핑에서 “열차가 사고 전 근로자들을 발견해 경적을 울렸는지 등은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에 따르면 해당 1903호 무궁화호 열차는 완만한 곡선 구간을 빠져나가면서 기관사가 선로 위에 있는 작업자들을 발견하곤 제동을 시도했지만 사고를 못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작업자들은 선로가 아닌 경사지 비탈면을 점검하기로 돼 있었는데 사고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선로 위에 있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에서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산재에 쉽게 노출돼 있어 안전문화 확산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이달 13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범국민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두 기관은 협력업체 안전보건체계 구축, 안전협의체 구성·운영 등을 위해 상호 지원키로 했다. 이날 사망 사고는 이 같은 협약을 맺은 지 채 일주일이 안 돼 발생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경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보기엔 완벽한 인재”라면서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철저히 파악하고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을 도울 일이 있으면 충분히 돕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얼마 전 당에서 재난에 대비해 행안위 간사인 윤건영 의원을 재난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는데 상황 파악을 해보고 필요한 대책이 있으면 하라고 긴급하게 지시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 근로자 사망 사고, DL건설 근로자 사망 사고 등에 대해 강력 대응을 주문하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회적 타살”이라는 표현으로 강도 높게 질책했다.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DL건설 대표와 임원진은 전원 사표를 제출했고, 포스코이앤씨는 모든 작업현장의 공사를 중단하는 동시에 안전점검에 착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시설 유지보수 등 업무수행에 있어 철도안전법령 위반사항이 있었는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위법사항 발견시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조치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도 조사에 나섰다. 사고 발생 직후 관할청인 대구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는 작업중지 조치를 내리고 사고 조사에 착수했다.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엄정하게 따져본다는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상자에 협력업체 직원과 코레일 본사 직원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재해가 빈번한 사업장에 대한 엄정 대응과 함께 맞춤형 안전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이태형 구미대 교수(소방안전과)는 “사실상 안전사고를 갑자기 줄이긴 힘들다”면서 “최대한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작업 및 현장 특성에 맞춘 안전 매뉴얼을 마련하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더해 더 강력한 법안 발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근로자가 스스로 안전모를 쓰고 작업장 안전수칙을 지키는 등 안전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면서 “우리 정부도 근로자가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안전교육을 강화해 사회 전반에 안전에 대한 의식을 키워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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