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계엄 후유증’ 여야 갈등의 정치 계속
‘완전한→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추락
민주·국힘 지지자 90% “상대 당 싫다”
58% “정치권 갈등 더 악화할 것” 비관
역선택 방지조항 등 당직자 선출규정
강성층 목소리에 좌우되는 구조 고착
“대선 결선투표·다당제 연합정치 필요
개혁 위해 정치인들 결단 중요한 시점”
대한민국 정치가 상승과 추락 사이의 변곡점에 섰다.
지난 2월 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지난해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측정해 발표했다. 한국은 10점 만점에 7.75점을 기록해 전체 32위였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완전한 민주주의’였던 한국은 지난해 0.34포인트가 내려가면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EIU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EIU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와 후속 정치적 교착상태로 정부 기능과 정치 문화 점수가 하향 조정됐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정치 시스템상으로는 계엄을 극복하고 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윤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6월 대한민국 국민은 이재명 대통령을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또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무렇지 않게 정상화될까. EIU는 보고서에서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시도에 따른 여파는 의회에서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양극화와 긴장을 고조했고 2025년에도 지속할 것 같다”며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IU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갈등의 구조화’가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 관측된다. 진영에 따라 같은 사안을 정반대로 바라보는 현상이 굳어지고 있고 이는 공동체가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제1야당과의 형식적 상견례를 거부했다. 국민의힘의 사과나 반성이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의힘 전 대선후보이자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문수 당 대표 후보는 정 대표를 향해 “극좌 테러리스트”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현 정치권이 갈등 해결보다는 갈등 조장에 더 어울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갈등의 확산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 사회의 수위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갈등 해결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은 상승할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양당 지지층 90%… “상대 당 싫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올 1월 한국리서치의 93만여명 마스터샘플을 기반으로 해 무작위 추출한 전국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웹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매우 싫다(호감도 100 중 10 미만)’고 응답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69.0%, ‘민주당이 매우 싫다’고 답한 국민의힘 지지자는 58.8%였다. EAI가 2021년 조사한 결과와 비교했을 때 ‘국민의힘이 매우 싫다’는 민주당 지지자(40.8%)는 28.2%포인트, ‘민주당이 매우 싫다’는 국민의힘 지지자(50.5%)는 8.3%포인트 늘어났다. 특히 양당 지지층의 상대정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모두 90%를 넘었다. 말하자면, 두 당의 지지자라고 하는 사람 10명 중 9명이 상대 당을 싫어하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이러한 양극화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 응답자의 57.8%는 1년 후 정치권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고, 이는 “완화될 것이다”는 응답(19.7%), “변화 없을 것이다”라는 응답(22.5%)보다 높은 수치다. 올해 1월의 여론조사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 6월 둘째 주 한국갤럽이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에게 이 대통령이 향후 5년간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전체 응답자의 70%가 잘할 것이라고 답한 가운데 민주당 지지층에서 그 응답률은 98%에 달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28%에 그쳤다.

◆답은 있다… “실천이 관건”
이러한 정치적 갈등 상황의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지목되는 것은 극단적 지지층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는 정당 내 구조 변화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학부 교수는 18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직 선출 규정에서 여론조사를 반영하는데 ‘역선택 방지조항’이라는 이유로 지지층 의사만 반영하는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제도적으로 강성 당원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위주로 굴러가다 보니 양당 협치가 더 안 되는 구조로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양극화 극복을 위해 기존 정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하게 제기된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 박준, 류현숙 연구위원 등이 발표한 ‘정치양극화 시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방안’ 보고서는 현재 한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 완화를 위해 다당제 연합정치 활성화를 제안하고 이를 위해 △권력구조 및 의회제도 개혁 △선거제도 개혁 △당내 정당개혁 등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 및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국회 위원회 자율성 강화, 소선거구제와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 비례대표 의석비율 대폭 확대, 공천제도하에서의 분권화 강화, 정당 내부의 경력관리체제 확립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대통령, 당 지도부와 중앙당, 양대 정당에 집중된 정치권력을 분권화함으로써 협치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제도책들은 선거 때마다 여러 차례 반복되어 제시된 바 있다. 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결국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 남아있는 상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견을 조율하여 장기적인 과제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통화에서 “제시된 정치개혁안들은 길게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제시됐던 안으로 한국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안은 이미 다 나왔다고 봐도 된다”면서 “중요한 건 정치인의 ‘결정’이다. 결정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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