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용 기간이 30개월 이상일 경우 5개월 미만 사용자에 비해 폐암 위험이 4.6배에 달한다는 의료계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서 가습기살균제 장기사용이 폐암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역학증거가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김경남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연구팀은 '한국역학회지' 최근호에 국내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고 정부 보상을 신청한 3605명의 가습기살균제 사용기간에 따른 폐암 발생 위험을 분석한 결과를 이같이 보고했다.

연구팀은 이들의 가습기살균제 사용기간을 ▲5개월 미만 240명 ▲5∼14개월 909명 ▲15∼29개월 934명 ▲30개월 이상 1522명 등 네 그룹으로 나눈 뒤 폐암 발생 위험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우선 3605명 중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지 4년 후 폐암으로 진단된 피해자는 121명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기간별 폐암 환자 수는 5개월 미만 2명, 5∼14개월 14명, 15∼29개월 23명, 30개월 이상 82명이었다.
30개월 이상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비율은 폐암 환자에서 67.9%(82명)로, 폐암으로 진단되지 않은 피해자 그룹의 41.3%(1440명)에 비해 훨씬 높았다.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 사용기간과 폐암 발생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성별과 연령, 흡연 상태, 가습기와의 거리 등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 요인을 보정해 분석했다. 결괏값에 혼란을 주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그 결과 가습기살균제 사용기간 5개월 미만 그룹을 기준으로 했을 때 사용기간이 30개월 이상인 그룹의 폐암 위험은 4.6배, 15∼29개월 그룹은 2.45배, 5∼14개월 그룹은 1.81배였다.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의 장기간 사용이 폐암 발생의 위험과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동물 실험 결과와도 일치한다. 연구는 국립환경과학원(NIER) 지원으로 수행됐다.
2011년 세상에 드러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만 5908명에 달하는 최악의 환경 참사다.

정부는 이번 달 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사과와 함께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김성환 장관은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22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대표들을 만나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환경부 장관으로서 진심으로 피해자와 유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국가를 대신하여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고 말했다.
앞서 가습기살균제의 주요 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점을 은폐한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이 시정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지난 6월 애경산업과 SK케미칼에 고발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8년 가습기살균제의 주요 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안전·품질을 확인받은 제품인 것처럼 허위로 표시·광고한 행위와 관련해 애경과 SK케미칼에 과징금 1억6100만원과 공표 명령을 부과했다.
두 기업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는 애경산업(2023년)과 SK케미칼(2024년)에 대한 제재가 확정됐다.
공정위는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심의를 열고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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