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엔비디아의 저사양 인공지능(AI) 칩 'H20' 구매를 어렵사리 허가받고 나선 돌연 홀대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14일 홍콩 명보는 한 달 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H20 칩의 대(對)중국 수출을 허가한 이후 중국 관리들이 신뢰성과 보안성에 대해, 중국 내 기술 기업들은 구매 필요성에 대해 거듭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 1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엔비디아, 어떻게 당신을 믿으란 말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게재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CCTV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이 '중국은 백도어(backdoors)가 있는 칩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공격한 게 대표적이다.
백도어는 정상적인 보안·인증 기능을 우회해 정보통신망에 접근할 수 있는 허점을 일컫는다.
명보는 전날 로이터가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해외로 선적되는 AI 칩이 중국으로 빼돌려질 것을 우려해 비밀리에 위치추적 장치를 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이 텐센트와 바이트댄스 등 자국 정보기술(IT) 기업에 H20 칩 구매 사유를 밝히라고 요구하며 해당 칩의 정보 보안 위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알지 못한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사실상 판단을 유보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을 인용해 중국 인터넷 규제 당국인 인터넷정보판공실(CAC)이 데이터 보안 우려를 이유로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에 지난 2주간 엔비디아 칩 구매를 전면 중단하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텐센트는 전날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AI 학습 및 모델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AI 칩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옵션이 있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이는 H20 칩이 아니더라도 '대안'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동안 상황을 종합해보면 중국은 H20 칩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반면 트럼프 미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세·무역 협상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해온 기색이 뚜렷하다.
애초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제한 차원에서 엔비디아에 고사양 AI 칩인 'H100' 수출을 불허하는 대신 중국 전용의 저서양 칩(H20)을 제작해 수출토록 허가했으나, 작년 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마저도 불허해 상황이 급변했다.
사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공개한 추론 AI 모델도 H20 칩을 활용해야 할 정도였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선 H20 칩 확보가 중차대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무역 전쟁'의 와중에서도 지난 4월 4일 희토류 17종 가운데 7종의 대미 수출통제라는 맞불을 놓아 트럼프 미 행정부로부터 H20 칩 수출 허가를 받아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칩 수출 대가로 판매수익의 15%를 미 연방정부에 내는 조건으로 엔비디아의 H20, AMD의 MI308 칩을 중국에 판매토록 허가함으로써 중국은 해당 칩을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H20 칩을 중국에 판매할 수 있게 됐는데, 갑작스럽게 해당 칩의 신뢰성과 보안성을 이유로 홀대가 이어지면서 판매 부진이 예상되자 엔비디아가 울상이 됐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H20 수출 통제로 재고가 쌓여 엔비디아는 55억달러(약 7조6천5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우려한 끝에 수출 허가로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이젠 중국 내 판매 부진을 걱정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H20 칩이 군수용 제품도 아니고 정부 기반 시설에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고 해명했다고 명보는 전했다.
이런 가운데 텐센트의 류츠핑 사장은 실적 발표회에서 "미국산 H20 칩 문제가 미중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텐센트는 상황 변화를 주시할 것"이라면서 "칩 성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관련 소프트웨어와 인프라를 더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최근 H20 칩에 대한 백도어 의심과 기타 보안 문제가 제기되는 데 대해 "중국의 보이콧 입장은 협상 전략에 더 가깝다"면서 "미중 간 무역 협상이 진전되면 H20에 대한 중국의 우려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세·무역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미 확보한 'H20 칩'을 차후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카드로 쓰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미중 양국이 지난 5월 합의한 90일간의 '관세 휴전' 마지막 날인 1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90일 더 연장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일단 관세 휴전이 연장됐고, 이젠 본격적인 무역협상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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