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업들 온실가스 배출량 27%
감축 노력 않고 석탄 발전 더 강화”
1인당 500만원·위자료 2035원 제기
10대 배출기업 경제적 책임 161조
13년 동안 온실가스 41.2억t 배출
한전 “기후위기 공감 감축 앞장설 것”
12일 오전 11시쯤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사과와 복숭아, 쌀 등 농산품 좌판이 열렸다. 밀짚모자를 쓴 농부들은 ‘한국 사과, 쌀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요?’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과일 바구니 옆에는 ‘사과한테 사과해’, ‘쌀려주세요. 기후변화 무서워요’ 등의 문구가 가격표 대신 놓여 있었다.

농업인들과 비영리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최초로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전력과 자회사 5곳이 국내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7%를 차지하는데 감축 책임을 다하지 않아 기후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원고 1인당 500만원과 위자료 2035원이다. ‘2035’는 지난해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석탄화력 발전소 폐쇄 기한으로 잡은 연도를 상징한다.
원고 소송 대리를 맡은 김예니 변호사는 “기후위기는 석탄화력 중심 발전에서 비롯하는데, 송전과 배전을 독점해 발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피고 기업들이 그 구조를 유지, 강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등은 기업 경영 판단으로 가능하다”며 “공기업으로서 능력과 지위가 있음에도 공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급변한 기후 환경으로 작황이 나빠진 농부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경남 함양에서 15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는 마용우씨는 “겨울이 짧아지면서 사과꽃 피는 시기가 4월 초로 앞당겨졌다”며 “뒤늦은 꽃샘추위로 냉해 피해가 심각해 2023년 사과 가격이 2배씩 오르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냉해, 폭염·폭우 등 극한 기후가 농업인에겐 직격탄인데 발전으로 인한 대가는 기업에만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충남 서산과 당진에서 벼농사를 짓는 황성열씨는 “농작물 피해는 인간이 만든 온실가스로 인한 결과”라며 “침수 피해에 벼가 잠기면서 마음도 몸도 물에 잠긴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들을 비롯한 농업인 6명이 이번 소송의 원고다. 기후솔루션이 전날 발표한 보고서 ‘기후위기,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가’에 따르면 국내 주요 온실가스 배출 기업 10곳이 2011년부터 2023년까지 배출한 온실가스는 총 41.2억t으로 집계됐다. 이 중 한국전력 산하 발전 자회사 5곳의 배출량은 25억t이었다. 이를 전 세계 폭염 피해액으로 계산하면 약 93조원의 손실 책임이 생긴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1%당 폭염으로 인한 세계 GDP 손실액을 측정해 온실가스 1t당 약 29.07달러(한화 약 4만원)의 손실 책임이 발생한다고 봤다.
해외에서는 여러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9년 네덜란드 환경단체 등은 다국적 석유회사 쉘(Shell)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프랑스에서도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변화 대응 책임 손배소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약 60개국에서 3000건에 가까운 기후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은 이번 소송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성실히 대응할 예정”이라며 “한전과 발전사는 기후위기 심각성과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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