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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웃음으로 맞선 야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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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07 22:53:31 수정 : 2025-08-07 22: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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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날들에 지쳐 실내에 들어앉아 영화만 보았다.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들, 행위와 감정이 흘러넘쳤다. 태풍이 몰아치면 내 몸도 흠뻑 젖는 듯했고 땀으로 번들거리는 육체를 볼 때면 나도 땀을 흘렸다. 희로애락, 고통과 분노의 모든 것이 영화 안에 있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 작용을 넘어선, 대상을 경험하고 겪어내는 정신과 육체의 총체적 반응에 다름 아니라 생각했다.

월터 살레스의 ‘아임 스틸 히어’는 부재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느닷없이 닥친 가족의 부재 앞에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가족의 이야기. 파이바 가족은 리우데자네이루 해변가에 살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인 루벤스와 아내 유니스, 다섯 명의 자녀가 살고 있는 집에는 춤과 음악, 책, 토론과 흥겨움이 흘러넘친다.

그러나 때는 1970년. 브라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시점이다. 평화로운 해변에 수시로 뜨는 군용 헬기와 뉴스를 장식하는 테러 소식은 이 평화의 토대가 매우 취약하고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평화는 한순간에 파괴된다.

어느 날 들이닥친 사복 군인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루벤스를 데려간다. 사건이 일어난 지 43년이 지나 정부가 공식 사망확인서를 발급할 때까지 이 납득할 수 없는 의문의 시간은 계속된다. 전반부 활기 넘치던 집은 그날 이후 조용히,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밑도 끝도 없는 가족의 실종, 응답 없는 질문, 진실 없는 삶. 삶이 갑작스레 중단될 수 있다는 만연한 공포가 가족을 짓누른다. 그러나 이들은 무너지지 않고 질기고 독한 시간을 버텨낸다. 그 중심에는 유니스가 있다. 유니스는 이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고 남편 실종의 진실을 밝히는 투사가 된다.

이 영화를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서사로 승인한다면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폭력에 온몸을 던져 맞선 그녀의 고결함, 우아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통에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그것뿐이다. 비천한 시대에 품위를 지키며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가족을 취재하는 언론은 그들에게 슬픈 표정을 지으라 요구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들은 더 환하게 웃는다. ‘웃자. 웃자. 웃자.’ 웃음은 야만의 시대에 맞서는 약자의 병기였다. 사적 기억을 통해 국가 공동체의 공적 기억을 이끌어내는 것은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오랜 주제였다.

어려서부터 파이바 가족을 알고 지냈고 그 자신도 유사한 사건을 겪은 감독은 자신의 경험과 파이바 가족의 아들인 마르셀루의 회고록 ‘아임 스틸 히어’의 기억을 섞어 동명의 영화를 완성한다. 감독의 전작 ‘중앙역’의 여주인공이었던 페르난다 토레스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위대한 연기를 펼친다. 고통을 견디고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유니스를 잔인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그녀의 연기를 통해 우리는 통각을 넘어선 숭고함을 경험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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