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살렸지만 짙어진 ‘불균형의 그림자’
“매일 빗발치는 전화가 예약 문의가 아니라 ‘여기 민생지원금 되나요?’ 입니다.”
부산에서 A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민생지원금 사용이 시작된 이후 달라진 세태에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민생지원금 소비가 본격화하면서 자영업자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식당, 가게 등은 모처럼 늘어난 매출에 한껏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대상에서 제외된 곳들은 “역차별 아니냐”며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줄어든 매출이 더 떨어질까 걱정이 크다.
김씨는 “식당은 사실 변한 게 없는데 민생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식당으로 고객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단골 고객까지 다른 식당을 빼앗기는 상황”이라며 “우리에게는 민생지원금이 ‘약’이 아닌 ‘독’이 됐다”고 했다.
대구에서 B한정식을 운영하는 박모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듯 보였고, 민생 지원소비 쿠폰 실행 소식에 희망을 봤다”며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민생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 돼 상황이 더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민생지원 소비처를 찾는 바람에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1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소비쿠폰 지급을 시작했다. 목표는 소비 진작과 소득 지원, 지역 균형발전이다. 지급액은 1인당 기본 15만 원이며, 저소득층과 비수도권 주민에게는 최대 45만 원까지 지급된다. 사용기한은 11월 30일까지다.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면서 내수 진작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는 민생회복지원금에 반색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돈을 풀면서 식당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며 “소상공인들이 가장 기대하던 정책”이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60대 박모 씨도 “지난 주말 매출이 평소 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어려운 시기에 당분간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 편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같은 소상공인 상권 내에서도 수혜 대상과 업종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어서다. 연 매출 30억 원 미만이라는 민생지원금 사용처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대전 유성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C식당 관계자는 “연 매출이 30억 원 조금 넘는다는 이유로 민생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됐다”며 “ 다들 소고기 사 먹겠다며 신이 났는데 오히려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생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된 것은 사실상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낙인이 찍힌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같은 사용처 제한은 소상공인 중심의 내수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 기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소비쿠폰이 지역 기반 자영업자들의 매출 회복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선별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실제 지원금을 소비하는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사용처 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계는 “국민의 소비 행태를 반영하지 않으면 쿠폰이 소비로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며 “누구나 필요한 곳에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에게 기본 1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신청 일주일 만에 전체 대상자의 78.4%인 3967만3421명이 신청했다. 지난 7일간 지급된 지원금은 7조12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54.4%)과 2021년 국민지원금(68.2%)에 비하면 같은 기간 신청률이 각각 24.0%포인트(p), 10.2%p 상승해 과거보다 신청 속도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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