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핑 등 K팝 아이돌 군무 줄히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안무도 참여
“리정씨 필요하단 말에 심장 요동”
‘스월파’ 범접 메가크루영상 화제
공개 3일 만에 1000만 조회 돌파
“네이버 직업란 ‘댄서’ 추가 기뻐”

“학창시절에 친구 권유로 장기자랑에 나가서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를 췄어요. 그때 ‘난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확신했죠. 그날 이후로 이걸 안 하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세계적인 K팝 신드롬의 한 축에는 이른바 ‘칼군무’로 대표되는 아이돌의 화려한 댄스가 있다. 안무가이자, 댄서 리정(27)은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콘, 엔하이픈, NCT 드림 등 정상급 K팝 그룹의 히트곡 댄스를 만들어냈다. 또 최근 종영한 엠넷 경연 프로그램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한국 크루 ‘범접’ 소속으로 참여해 K댄스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리정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 많은 분에게 춤 자체가 사랑을 받았다고 느꼈다”며 “대단한 출연진과 함께 이런 프로그램에 또 한 번 참여하게 된 것 자체가 참 행복했고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21년 방송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첫 시즌에 YGX 크루의 리더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첫 시즌에서 경쟁했던 허니제이, 아이키, 가비, 효진초이 등과 함께 연합팀을 꾸려 국가대항전 형식으로 진행된 세 번째 시즌에 합류했다.

③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이번 시즌에서는 범접의 메가크루 미션 영상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해당 영상은 ‘몽경(夢境)-꿈의 경계에서’란 주제로 갓을 쓴 저승사자의 콘셉트로 상모돌리기, 부채춤 등 한국 전통 무용을 결합해 집단 무의식을 표현했고, 공개 3일 만에 조회수 1000만회를 돌파했다. 리정은 “어떻게 한국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며 “우리나라 국민이 가진 자부심을 표현하려고 했고,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메가크루 미션은 1위에 올랐지만, 범접은 아쉽게 세미파이널에서 탈락하며 최종 4위에 머물렀다. 탈락 당시 리정의 오열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아쉬움은 없다”면서도 “패배감 때문이 아니라 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고, 언니들과 순수하게 춤만 추는 이 시기가 정말 끝났다는 생각에 막 울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리정은 올여름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안무에도 참여했다. 작품 속 가상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의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 사자보이즈의 ‘소다 팝(Soda Pop)’ 등이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했고, 루미와 진우 캐릭터의 모션 캡처도 담당했다. 모션 캡처는 가상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 인간의 동작을 디지털 정보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리정은 “약 3년 전 제작진과 첫 화상 미팅을 할 때 K팝을 주제로 한 애니를 기획하고 있고, 리정씨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요동쳤다”며 “기획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물리적인 한계는 없다. 원하는 대로 하라’는 얘기를 듣고 말 그대로 꿈을 펼쳤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초기 단계부터 헌트릭스, 사자보이즈 캐릭터 설정을 모두 봤다”면서 “이들을 실제로 존재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자아와 개성에 맞게 어떤 안무를 줄지 고민해서 안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헌트릭스가 악귀를 잡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장면과 수다를 떨며 찜질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리정의 동작이 반영됐다고 한다.
최근 가요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안무 저작권에 관해 리정은 “창작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라며 “선배, 동료, 후배들과 함께 오래 걸리더라도 잘 닦아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소신을 밝혔다. 댄서로서 K팝 문화가 성숙해 가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것도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네이버 직업란에 ‘댄서’가 추가된 것만으로도 문화가 전보다 훨씬 발전했다고 느낀다”며 “온라인에서 춤에 대해 다같이 토론하고, 어떤 게 좋았다고 얘기하는 분위기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리정은 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저는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를 접하면서 자란 세대고, K팝이 성장하는 것도 지켜봤다”며 “늘 춤이 제 일상 속에 있었고, 춤은 제 삶이자 구원”이라고 말했다.
“행복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는 춤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상상도 하기 싫고요. 생각보다 계획은 별로 없고, ‘춤이 이끄는 대로 가자’는 생각으로 좋은 춤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매 순간 노력하겠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