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폭풍 성장…이젠 ‘피로감’만 남은 명품 시장
글로벌 명품 업계가 젊은 소비자층의 이탈 조짐과 소비 트렌드 변화로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급부상했던 MZ세대가 최근 몇 년간 급등한 명품 가격에 피로감을 느끼며 등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경기 하강에 따른 단기적 조정인지 구조적 전환의 신호탄인지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28일(현지시간)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다고 밝혔다. 순이익은 무려 22%나 줄었다. 프랑스 증시에서 LVMH 주가는 올해 들어 지난 25일까지 23% 하락했다. 루이뷔통, 디올, 펜디 등 세계적 브랜드를 거느린 ‘명품 제국’에 금이 간 것이다.
실적 발표 후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이번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라며 낙관적인 입장을 내놨지만, 시장에서는 구조적인 변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투자은행 UBS는 “투자자들은 지난 2년간 유럽 명품 기업들의 회복을 기다려왔으며, 최근에는 명품 산업의 장기적인 매력에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도 지난 24일 발표한 실적에서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 감소했다고 전했다. 한때 성장세를 이끌던 프리미엄 브랜드들마저 주춤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명품 업체들이 인기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을 공격적으로 인상하면서 소비자들의 ‘가성비’ 기대와의 괴리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명품 브랜드의 매력도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동안 가격 인상에 신중했던 보석 브랜드들은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카르티에, 반클리프 아펠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 그룹의 경우 올해 상반기 주얼리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가격 대비 실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SNS 통해 확산하는 ‘명품 피로감’…뜨는 ‘듀프 소비’
명품에 대한 MZ세대의 거리두기는 온라인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명품 브랜드의 과도한 가격 인상과 마케팅 전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과시적 소비’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
대신 품질은 유사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대체 상품을 찾는 ‘듀프(Dupe)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듀프’는 원래 ‘복제품’을 의미하는 ‘듀플리케이트(duplicate)’에서 유래한 단어다. 과거에는 ‘짝퉁’에 가까운 부정적 의미를 가졌지만, 최근에는 정품과 유사한 품질과 디자인을 갖춘 합리적 대체재로 인식되며 긍정적인 소비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 미국 등 주요 명품 시장의 젊은 소비자들은 브랜드 자체보다는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소비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전문가들 “명품의 시대, 구조적 전환기 맞았다”
한 소비 트렌드 전문가는 “이번 매출 부진은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닌 팬데믹 이후 급부상한 MZ세대의 소비 트렌드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부 명품 브랜드는 고급화와 희소성 유지를 명분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가격을 급격히 인상했지만, MZ세대에게는 과잉 마케팅과 가격 부풀리기로 인식됐다”며 “이들은 브랜드 그 자체보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자기 자신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격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브랜드 전략 전문가는 “듀프 소비는 단순한 저가형 소비가 아닌 브랜드 중심 소비에서 가치 중심 소비로의 본질적인 전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가 브랜드가 더 이상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지 않는 현시점에서 명품 업계는 외형적 화려함이 아닌 내적 가치와 경험 중심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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