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어제 이재명정부 출범 후 첫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은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남측에서 거론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초청 가능성에 대해선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다”고도 했다.
김여정 담화는 전반적으로 대남 비판적이나, 대북 방송 중단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재명정부의 대북 조치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면 김여정 담화와 같은 반응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담화 표현도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의 ‘삶은 소대가리’나 윤석열정부 때의 ‘온전치 못한 사람’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방이나 원색적인 대남 비난이 없다. 절제된 언어로 상당히 수위를 조절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여정이 담화에서 한반도에서의 국가 대 국가 관계 고착화를 강조하면서 통일부 해체를 시대적 과제라고 한 것이 주목된다. 김정은의 ‘두 국가론’에 대한 남측의 호응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담화 시점상 다음 달 예정된 이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에 이런 희망이 반영되기를 압박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김여정 담화에 대해 신뢰 회복과 평화·공존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평화적 분위기 속에서 남북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차분히 일관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후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대북 전단 살포 중지, 개별 북한 관광 허용 검토 등 남북 유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남북 긴장 완화는 접경지 주민생활 안정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긍정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평화·공존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적대적 핵무장국과 비무장국 사이의 평화·공존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결국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일을 지향한다는 헌법 정신이나 국민감정에서 볼 때 북한의 두 국가론에 호응할 경우 남남 갈등도 우려된다. 과거 역대 정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정부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신중한 자세로 남북 관계를 탄력적으로 관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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