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30일자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내용이 우리 심금을 울린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1개월가량 남은 시한부 삶을 사는 A(당시 51세)씨의 사연이다. 그에게는 절도 혐의로 서울 시내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아들(당시 19세)이 있었다. A씨는 틈만 나면 간병인한테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만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에 병원 측은 해당 구치소에 사정해 이른바 ‘특별면회’ 허락을 받았다. 역시 병원의 요청을 받아들인 119 구급차가 출동해 A씨를 구치소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이별을 앞둔 부자(父子)의 마지막 상봉이 이뤄졌다. 면회가 끝난 뒤 A씨는 웃으며 “원을 풀게 돼 참으로 고맙다”며 도움을 준 이들에게 인사했다.

이 보도를 보면 ‘대체 특별면회가 뭐길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A씨처럼 딱한 처지에 놓인 국민을 위한 선처는 당연한 조치라고 하겠는데, 굳이 병원이 나서 ‘특별면회 좀 허가해달라’고 간청한 점은 납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 시절만 해도 특별면회가 국회의원, 행정부의 차관급 이상 공직자, 군 장성 등에게만 허용되는 일종의 특권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통상 교정시설의 면회는 칸막이로 차단된 공간에서 10분 안팎으로 실시됐다. 하지만 국회의원 등이 “재소자와 만나고 싶다”며 특별면회를 요청하면 교정당국 측은 칸막이가 없는 독립된 장소에서 최장 30분까지 재소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국 교정기관을 관장하는 법무부는 2009년 9월 특별면회 관련 규정을 대폭 손질했다. “일부 고위층 인사에게만 특별면회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어 관련 조항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 모두 사전 신청을 통해 특별면회를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법무부는 또 “특별면회란 용어가 너무 구시대적이고 권위적”이라며 ‘장소 변경 접견’이라는 새 표현도 도입했다. 칸막이가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딱딱한 일반 면회실 대신 좀 더 자유로운 공간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 지인이 범죄 혐의로 수감된 재소자인 경우 누구나 이메일 또는 팩스를 통해 해당 교정시절에 장소 변경 접견을 요구할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서울남부교도소를 찾아 그곳에 수감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면회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형식은 장소 변경 접견, 그러니까 옛 특별면회였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2024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는 중이다. 접견자는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2인자’에 해당하는 국회의장이고, 재소자는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니 말 그대로 ‘아주 특별한 면회’였다고 하겠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범여권을 중심으로 조 전 장관 특별사면 요청이 빗발치는 가운데 성사된 일이라 눈길이 쏠린다. 특별면회, 특별사면 같은 단어에 ‘일반’ 국민은 상실감만 더욱더 커질 뿐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