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무장관, 트럼프에 “파일에 이름 적시
피해자 정보 등 있어 공개 않겠다” 보고
“재집권 땐 관련 문서 공개” 약속 뒤집어
FBI 국장도 행정부 인사들에 사실 거론
2019년 사망한 금융 갑부 출신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파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름이 누차 적시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분열 조짐을 만들며 미국 정가에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엡스타인 파일 파문이 트럼프 대통령의 국면 전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일파만파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팸 본디 법무부장관이 지난 5월 백악관 회의에서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수백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면서, 엡스타인과 어울린 사람들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이 적시돼 있다고 알렸다. 본디 장관은 이 자리에서 아동 포르노와 피해자들의 정보가 포함돼 있으니 엡스타인 조사와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에서 법무부의 파일 공개 관련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다른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 이름이 엡스타인 파일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사적으로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이에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로이터에 WSJ의 보도에 대해 “민주당과 진보 언론이 만들어 낸 가짜뉴스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수사 당국이 확보한 엡스타인의 성범죄 관련 증거자료와 참고자료 등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맥락에서 거론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보도만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엡스타인 의혹’에 대한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변화를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WSJ의 이번 보도는 크게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엡스타인이 옥중 사망하자 “(사망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고,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재집권한다면 당장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최근 돌연 입장을 바꿨다. 지난 7일 법무부가 “엡스타인 성 접대 리스트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엡스타인이 유명 인사들을 협박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자 엡스타인 타살설을 신봉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이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논란은 지난 18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2003년 엡스타인의 생일 때 그에게 외설스러운 그림을 그려 넣은 편지를 보냈다고 WSJ가 보도하며 한층 더 폭발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며 WSJ를 상대로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자신의 선거 캠프가 러시아 측과 공모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유도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를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했다고 비난하는 등 국면전환까지 시도하고 있으나 정치적 폭발성 뿐 아니라 자극성까지 강한 엡스타인 관련 추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백악관은 해당 보도를 한 WSJ 소속 기자를 트럼프 대통령의 스코틀랜드 출장 취재진에서 배제하며 ‘뒤끝’까지 보여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엡스타인은 미국의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10대 여성들을 유인해 인신매매와 성 착취를 일삼았다. 그는 2019년 7월에 최소 36명의 미성년자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그 다음 달에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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