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인물과 서사, 그리고 무대가 촘촘히 엮인 웰메이드 작품이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사랑에 빠져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는 창조적 상상을 바탕으로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고전적 서사와 대문호의 젊은 시절 사랑과 이별이 맞물린다. 애초에는 코미디로 시작된 ‘로미오와 에델, 해적의 딸’이 점차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비극으로 바뀌는 과정, 그리고 이별의 아픔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주인공들 서사는 아름답게 그려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휩쓴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9년)가 원작이다. 당시 작품상 수상 여부를 두고는 논란이 있었지만, 극작 거장 톰 스토퍼드에게 첫 아카데미 각본상을 안긴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연극화 가능성을 눈여겨본 디즈니는 영화·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작가 리 홀에게 연극 각색을 맡겼고, 2014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다. 국내에서는 2023년 초연 이후 이번이 두 번째 무대다.
후반부 셰익스피어가 완성한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이 우여곡절 끝에 극중극 형태로 펼쳐지는 장면이 극적 정점이다. 윌 셰익스피어 본인이 로미오 역을 맡고, 비올라가 줄리엣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관객은 무대 뒤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구조로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무대 위와 무대 밖, 극중 현실과 극중극의 경계가 흐려지며 서사의 깊이가 더해진다.
작품 전반은 셰익스피어 유니버스에 바치는 경의의 패러디와 오마주로 가득하다. 오해로 인해 로미오가 줄리엣과 함께 비극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셰익스피어 대사가 그대로 낭송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대사는 물론, ‘햄릿’, ‘맥베스’, ‘십이야’,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남긴 소네트에서 가져온 문구들이 작품 곳곳에 자연스럽게 삽입돼 있다. 또한 셰익스피어에게 자신이 쓴 시집을 건네는 뱃사공은 실존 인물로서 역사와 상상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만든다.

무대 변화 또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깊은 무대를 활용해 회전 턴테이블과 승강 장치를 유려하게 활용하며, 공간은 왕궁에서 런던의 번화가, 템즈강변, 로즈극장, 글로브 극장 등으로 자유롭게 변주된다.
불멸의 유산이 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긴 두 주인공은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각자의 길을 떠난다. 극 중 대사 “아픔과 치료가 하나”라는 말처럼, 연극은 비극적 현실을 넘어 예술이 품을 수 있는 희망과 영원을 이야기한다. 연극이기에 가능한 낭만과 유머, 그리고 찬란한 상상력이 무대 위를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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