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 공군은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없었다. 연락기와 훈련기가 한국 군용기의 전부였다. 교전 이틀째인 6월26일 공군 조종사 10명이 한국을 떠나 일본 이타즈케의 미 공군 기지로 갔다. 오늘날의 후쿠오카 공항이다. 그곳에서 우리 공군 장교들은 미군의 지도 아래 1주일간 ‘벼락치기’로 F-51 머스탱 전투기 조종술을 익혔다. 이들은 7월2일 F-51 10대를 몰고 귀국해 곧장 실전에 투입됐다. F-51을 제작한 미국 기업 노스아메리칸항공은 훗날 보잉(Boeing)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 공군의 F-51 운용은 한국이 보잉과 맺은 첫 인연이라고 하겠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21 사태가 일어났다. 한국이 미국을 도와 참전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동맹인 한국의 방위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듬해인 1969년 미국은 당시만 해도 서방 세계에서 최고 성능을 자랑하던 F-4 팬텀 전투기 4대를 한국 공군에 인도했다. 원래 맥도넬 더글러스 제품이었던 F-4는 1958년 첫 비행 후 생산이 중단된 1981년까지 5200대 가까이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다. 1997년 맥도넬 더글러스가 보잉에 합병되며 우리 공군이 운영하는 F-4 기체들의 유지·보수·정비 또한 보잉으로 넘어갔다. 1960년대부터 무려 55년간 한국 영공을 든든하게 수호한 F-4는 지난 2024년 6월 모든 임무를 마치고 퇴역했다.
현재 KF-16과 더불어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꼽히는 F-15K 슬램 이글은 보잉에서 생산한 F-15 이글 전투기를 한국 현실에 맞게 개량한 모델이다. 이 또한 맥도넬 더글러스가 개발했으나 두 회사가 하나로 합치며 보잉의 기종이 되었다. 2002년 한국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을 추진할 당시 미국의 F-15와 프랑스의 라팔이 벌인 치열한 경합은 오늘날에도 전설처럼 회자될 정도다. 우리 해군이 6대를 도입해 최근 실전에 배치한 P-8 포세이돈 대잠초계기 또한 보잉의 작품이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바다 위에서 북한 잠수함의 활동을 탐지하는 것이 핵심 임무라고 하겠다.

윌 셰이퍼 보잉코리아 사장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항공우주 산업과 보잉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셰이퍼 사장은 한국군이 사용했거나 현재 사용 중인 F-51, F-4, F-15, P-8 등을 거론한 뒤 “보잉은 앞으로도 한국과 항공우주 그리고 나아가 연구·개발(R&D) 분야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세계 무기 시장을 휩쓰는 이른바 ‘K방산’에 대해 그는 “한국의 전투기 자체 개발 등 짧은 기간 내 이뤄낸 독자적 기술력과 방산 수출 확대 노력이 매우 인상 깊다”고 평가했다. 이에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한국과 보잉은 한국 공군 창설기부터 지금까지 공군 전력 증강을 위해 협력해 온 전략적 파트너”라고 화답했다. 하늘을 향한 꿈을 공유한 한국과 보잉의 협력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고대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