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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삼킨 ‘검음 안에서’… 산란하는 언어의 파편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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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22 06:00:00 수정 : 2025-07-21 19: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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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말의 뒷모습으로부터…’

화자와 청자 사이, 언어는 실패를 동반
언어가 빚는 오류 수면 위로 끌어올려

목탄으로 만들어낸 완전한 어둠 속에서
작가, 언어의 모순 너머의 가능성 탐색

우리가 언어의 불완전함을 자각할 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을 마주해

언어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동반한다. 복합적 상황과 맞물려 화자가 품게 된 의미는 말로 내뱉는 순간 타인의 것이 된다. 개인의 성향이 스며든 어투와 고유한 목소리, 선택된 단어들의 조합은 섬세한 발화가 되지만, 그 말은 청자의 체계와 맥락 안에서 해체되고 새롭게 구성된다.

의미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언어는 이처럼 취약하고 위태롭지만, 그 불완전함은 쉽게 간과되곤 한다.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필연적으로 ‘나’라는 프레임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말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한다. 그렇게 쌓인 발화의 조각들은 휘발되고 잊혀지기도 하지만, 종종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사랑을 부르며 타인과 우리를 이어주고, 반대로 오해와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검음 안에서’(2025). 종이 패널에 목탄. 97×162.2㎝

◆검고 매끄럽고 투명한

시각예술가 이주영(35)의 작업은 언어가 지닌 다중성과 유동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끊임없이 말이 떠다니는 시대에, 그는 언어가 빚는 오류와 간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져왔다.

이러한 탐구는 ‘검정’의 언어로 전해진다. 세상의 모든 색이 합쳐진 검정은 모든 것을 잠재워버리는 암막이자, 동시에 빛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어둠이다. 모든 것을 품되 어떤 의미도 고정하지 않는 색으로, 무한히 열려 있는 언어의 가능성을 닮았다. 이주영의 검정은 따라서 감추기보다 드러내는 투명한 물과 같은 성질을 지닌다. 검음을 구현하기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목탄 역시 흩날리되 지워지지 않고, 스치며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말의 속성을 상기한다. 목탄 가루를 겹겹이 쌓고 덧입힌 무수한 손짓의 궤적 속에서, 우리는 언어의 그림자를 좇는 작가의 조용한 사투를 목격하게 된다.

이주영 개인전 ‘Wet Words Whisper Wide’ 전시 전경. OCI미술관 제공

OCI미술관에서 26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Wet Words Whisper Wide(웻 워즈 위스퍼 와이드)’는 이주영이 파헤쳐온 언어의 모순과 미끄러짐 너머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전시 제목은 순환하는 언어의 모습을 닮은 W로 시작하는 단어들로 구성된다. ‘Wet’는 흐르고 스며드는 말의 유동성을, ‘Whisper’는 단호하고 거친 말이 부드럽고 친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Wide’는 언어의 확장성과 해방성을 은유한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검음을 향해’는 작가의 검고 투명한 언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28개의 종이 패널이 서로 맞닿아 있거나 여백을 두고 배치되어 기하학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온전한 말이 되려다 이탈하고 떨어져 나가는 단어의 형상, 혹은 언어가 되기 위해 꿈틀거리는 발화의 의지를 상상하게 한다. 먹이 쌓인 밀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검정을 품고 있는 패널들은 심연의 가장자리를 따라 조용히 침잠해 들어가는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예고한다.

◆언어가 열리는 자리

‘겹쳐진 시’(2025). 트레이싱지에 인쇄된 아티스트 북. 각 6×18㎝(3권).

전시장 곳곳에는 얇은 먹지에 같은 문장을 반복해 새긴 ‘Murmur(머머)’ 연작이 흩어지듯 배치되어, 전시를 하나의 유기적 형태로 단단히 엮는다. 음각된 글자들은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작가의 ‘웅얼거림’ 속에서 길어 올려진, 말의 무게가 새겨진 흔적이다. 관객은 문장을 이해하려 다가가다가, 그것이 거울처럼 반전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의미를 상실한 채 힘의 기척만이 남겨진 종이의 뒷모습은 화자와 청자로 이루어진 언어의 필연적 구조를 상기한다. 화자는 자신의 의도가 전달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힘을 꾹꾹 싣지만, 청자는 그것을 아무런 왜곡 없이 바라보지 못한다. 두 존재 사이에는 언제나 투명한 막, 언어라는 간극이 있다. 서로를 비추되 영원히 침투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작가는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닿지 못하는 말들을 전달하려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주영은 언어의 숙명에 좌절하기보다, 그 실패와 다중성을 자각하는 것이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임을 암시한다. 이는 문학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끝없는 시도’로 보았던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철학자 모리스 블랑쇼(1907∼2003)의 사유를 떠올린다. 그는 ‘웅얼거림’을 완전한 침묵도 말도 아닌 상태, 말 이전의 말, 혹은 말 이후의 잔향으로 보았다. 자신의 저서 ‘문학의 공간’에서 그는 “웅얼거림 위에 언어는 열리고 그리하여 언어는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라는 것이 되고, 말하는 깊이가 되고, 공허라는 어둑한 충만이 된다”고 했다. 이주영의 ‘웅얼거림’도 부정적 의미의 주저함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맴돌며 그것의 실체를 밝히러 들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트레이싱지에 인쇄된 책 ‘겹쳐진 시’는 말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선언문처럼 담아낸다. 한 장씩 투명하게 겹쳐지는 이 책은, 언어가 흐르고 정체되고 축적되는 미세한 순간을 감각하게 한다. “말의 바깥에서 드디어 말을 했다.” “우리는 말을 버리고 나서야 서로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언어가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진실, 영원히 새어나가는 말 너머의 감각을 말로써 붙잡는다. 이때, 말은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웅얼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명료함조차 페이지를 넘길수록 겹겹이 포개지고 축적되다가, 마침내 속삭임처럼 희미해진다. 그 말들은 무엇을 남기고, 어디로 흩어졌는가. 작가는 언어를 머물게 하고 또 해방시키며, 언어의 양가성과 덧없음을, 그리고 그 소멸 이후에 남겨지는 잔향을 드러낸다.

◆어둠을 통과하여

검음을 ‘향하여’ 시작된 전시는 검음 ‘안에서’ 귀결된다. 목탄으로 빼곡히 채워진 이 평면은 어떤 수사도, 목소리도 거둬들인 채, 진실의 기척만을 머금고 있다. 시작과 끝,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말의 잔해들, 태풍과 고요, 침묵이 모두 이곳에 침잠해 있다. 그 속에서 산란하는 언어의 파편들은 미세한 빛줄기를 이루며 고요히 아른거린다.

실패를 밀어내지 않고 끌어안는 이주영의 예술에서, 우리는 언어의 불완전함을 자각할 때에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희망을 마주한다. 언어가 세계를 구할 수 있는지, 혹은 그 무능을 증명할 뿐인지 묻는 자리에서, 작가는 비관이 아닌 가능성의 편에 선다.

더 깊이 이해하고, 투명하게 들으려는 마음. 유려하고 분명한 말 대신, 웅얼거림과 머뭇거림 속에서 떠오르는 말 너머의 감각. 이주영의 ‘검은 언어’는 어둠을 통과해 어스름한 잔광을 향해 나아간다. 언어가 미끄러지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말을 본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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