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여.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마냥 물폭탄이 쏟아져 집이며 논·밭이며 서산 읍내가 온통 쑥대밭이 됐어요."
충남 서산에 닷새 동안 5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차량 침수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산 시민 정광희(79)씨는 21일 “쉴새 없이 때리는 천둥·번개·벼락에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온 빗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며 “지금도 귓전에는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번쩍인다”고 말했다.

도당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를 입은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마을에서는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차 거실이며 안방이며 모두 난장판이 됐다. 비닐하우스는 모두 뜯겨나가 초토화됐고, 논밭은 물바다가 됐다. 트랙터를 비롯한 영농장비도 모두 범람한 하천물에 잠겨 못 쓰게 됐다.
마을 주민 신효수(65)씨는 “폭염이 시작된 이제부터가 더 문제라며 다 썩어버려 악취를 풍기는 농작물을 치우고 다시 새 작물을 심을 엄두가 안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당진천이 범람해 시장전체가 침수된 당진시 당진어시장·전통시장 침수피해 현장은 참담했다. 생선을 파는 어물전과 식당은 어느 한 곳도 온전한 곳 없이 쑥대밭이 됐다. 한 상인은 “저지대 침수가 반복되고 있는데도 배수펌프장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벌어진 인재(人災)”라며 행정당국을 원망했다.


농약종묘사를 운영하는 김춘재(59)씨는 “저지대인 이곳의 치수가 잘못돼 큰비만 왔다하면 수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손해도 손해지만 시장 상인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른다”고 성토했다. 김씨는 “아직도 전기와 통신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며 “물에 잠긴 콘센트는 감전이나 합선 위험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워낙 피해가 커서 언제 복구가 이뤄질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한 충남 아산시 염치읍 일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작업을 했지만 복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나왔다. 한 주민은 “우리 집도 피해를 봤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더 심한 피해를 본 집을 도와주고 있다”며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밀했다.

아산시를 비롯해 수해를 당한 충남 곳곳에서 매일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피해가 워낙 커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박찬대 당대표 후보와 국회의원 등 150여명은 이날 충남 예산을 찾아 수해 현장을 둘러보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민주당은 전국적인 폭우 피해를 고려해 26∼27일 예정됐던 호남권·수도권 권역별 권리당원 투표를 전당대회가 열리는 다음 달 2일로 연기한 상태다.

정청래 후보는 페이스북에 당 대표 선거운동 중단을 알리며 “당분간 수해 복구에 집중하겠다. 수해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후보는 이날 예산을 거쳐 광주에서 수해 복구 활동을 펼쳤다. 박 후보는 SBS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매년 여름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해를 계속 겪고 있어 과거 대책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든다”며 “수해를 막기 위한 예산이나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번 기회에 (재해 대책)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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