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위·농해수위 위원 18명, 이해충돌 우려”
“식량안보 위기 속 농지조사 등 규제 강화必”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농사를 짓지도 않는데 농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 투기나 부동산 활용을 위한 목적이 큰 거 아닌가요?”
“국회의원이 바쁜데 어떻게 농지를 직접 경작한다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죠.”

제22대 국회의원(배우자 포함) 5명 중 1명꼴로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소유한 농지의 총 가액만 144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농지법 위반이 의심되거나 유관 상임위원회에 속해 이해충돌 가능성이 높은 의원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64배에 달하는 농지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식량위기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비(非)농민의 농지 소유를 제한할 수 있는 관리감독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6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의원 농지소유 현황’을 발표했다.
경작은 안 해도 농지는 보유…국회의원 67명 ‘농지 부자’
경실련이 2025년 3월 기준 제22대 국회의 정기 재산공시를 분석한 결과, 전체 국회의원 300명(본인 및 배우자) 중 22.3%에 해당하는 67명이 전·답·과수원 등 농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농지의 총 면적은 26㏊(헥타르), 약 7만9000평에 이른다. 전체 가액은 143억5245만원이다. 1인당 평균 보유 면적은 0.39㏊(약 1173평), 평균 가액은 약 2억1400만원 수준이다.

가장 많은 농지를 가진 의원은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1.69ha),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1.43ha), 민주당 송재봉 의원(1.37ha) 등의 순이다.
가액 기준으로는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11억6000만원), 민주당 이병진 의원(10억9500만원), 민주당 안도걸 의원(10억2100만원)이 상위권에 올랐다.
정당별 1인당 농지 평균 보유 면적은 더불어민주당(0.4ha)이 국민의힘(0.38ha)보다 넓었다.
헌법 제121조는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헌법 정신에 따라 농지법 제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상속 등으로 농지를 취득할 경우 1만㎡ (1ha)미만까지 보유할 수 있다. 22대 국회의원 중 이 기준을 초과하는 이들은 7명으로, 실제로 농업경영을 하고 있지 않다면 농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또 현역 의원 중 52명은 농업식품기본법 제3조 제2호가 정하는 ‘농업인’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농업식품기본법은 농업을 경영하거나 이에 종사하는 자로서 1000㎡(0.1ha) 이상의 농지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보유 농지의 평당 가액이 50만원을 넘어 투기 목적이 의심되는 의원은 12명,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 국토 개발과 농지 보전 이용을 다루는 상임위원회에 속한 의원은 18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일부 의원은 농지 규제 완화를 담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최나리 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는 “배우자 등 세대원이 경작을 하고 있거나 농지법에서 예외로 하고 있는 위탁 경영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농지 소유 및 이용과 관련된 정책의 결정 그리고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농지 소유는 이해 충돌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농지를 투기 목적이나 직불금 부당 수령을 위해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식량자급률 높인다더니…농지규제는 완화
정부가 식량안보 자급률을 끌어올리겠다고 하면서도 농지 규제 완화를 통해 사실상 농지 면적 감소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국의 논·밭 경지 면적은 18만6498ha 줄었다. 매년 여의도 면적(290ha)의 64배에 달하는 농지가 감소하고 있는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에서 오는 2027년까지 농지 면적을 ‘150만㏊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는 현행 농지 제도의 구조적 허점이나 주말·체험영농, 농업법인에 해당하는 각종 예외 규정 등으로 인해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해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실련은 국회의원이 농지를 보유할 경우 취득 경위와 이용 실태를 명확히 공개하고, 농지 투기 의심 의원들에 대해서는 백지신탁·농지은행 위탁 또는 처분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농지는 국가의 식량주권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 자원인 만큼, 전수조사를 통한 실태 파악과 통합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임영환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 위원장은 “농지 관리와 식량안보를 위한 150만ha 유지를 위해선 상속 농지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농지 전수조사를 통한 체계적 관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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