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이충면 이어 왕윤종 ‘시인’
당시 회의 참석 참모들 잇단 목격
수사기록 받았던 경북청 등 수사
‘항명 무죄’ 박정훈, 참고인 출석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 사필귀정”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31일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해병대원 순직 사건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받고는 크게 화를 냈다는 일명 ‘VIP 격노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이 채해병 특별검사팀(특검 이명현) 조사에서 하나같이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내는 걸 목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다만 해당 의혹으로 기소까지 이어지려면 윤 전 대통령이 사건의 경찰 이첩 등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와야 한다. 특검팀은 관련자를 연달아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은 전날 채해병 특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이 (당시 회의에서) 화내는 것을 목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이 그날 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의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에게 화를 냈고, 임 전 비서관을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에게 ‘회의실에서 나가라’고 했다는 게 왕 전 비서관 진술의 요지다. 앞서 특검 조사를 받은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도 모두 ‘윤 전 대통령이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크게 화를 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 탄핵과 재구속 이후 입장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
채해병 특검팀은 당시 회의 참석자를 윤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임 전 비서관과 이들 3명 등 총 7명으로 특정했다.
정민영 특검보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7명을 모두 소환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체로 다 조사할 계획이나, 출석 조사 일정을 모두 조율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2인자’로 불리는 김 전 장관은 내란 특검팀(특검 조은석)뿐만 아니라 채해병 특검팀 수사선상에도 오르게 됐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엔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과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채 상병 사망 당시 경북경찰청장이던 최주원 치안감을 피의자 신분으로 각각 소환해 조사했다. 정 특검보는 “경북경찰청은 2023년 8월2일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최초 수사 기록을 이첩받았다가 국방부 검찰단으로 기록을 넘겨준 곳으로,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개입 의혹 전반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박 대령이 이끈 해병대 수사단은 ‘초동조사 결과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국방부 지시를 거부하고 기록 일체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그러자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이 항명했다며 경북경찰청에 수사관을 보내 사건 기록을 모두 회수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군 검찰단에 협조하도록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대령은 항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채해병 특검 출범 후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팀은 군검찰의 항소를 취하했고,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귀했다.
수사 외압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박 대령은 이날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면서 VIP 격노설에 대해 “설(說)이 아니라 사실로 규명이 됐으니 모든 것이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시작점이었다”며 “결국 진실은 모두 밝혀지고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19일이 채 상병 2주기라고 언급하며 “아직 그 죽음이 왜 일어난 것인지, 죽음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며 “특검에서 여러 사실을 밝히고 있고, 책임이 있는 자들이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다만 VIP 격노설로 윤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기려면 ‘윤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지시를 했다’는 취지의 진술이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군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화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국방부) 장관이 이를 따랐다는 것까지 이어지긴 어렵다”며 “공무원 직권남용이 성립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통령이 이첩을 보류시켰다 등의 특별한 지시를 했다는 사실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구체적인 지시가 증명되지 않아 공무원 직권남용을 적용하기 힘들다면 ‘강요교사’ 혐의로 기소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군사법원에서 지난해 1월 이첩 보류 지시를 ‘완성된 명령’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윤 전 대통령에게도 직권남용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란이 인 바 있다.
한편 군인권센터는 채 상병 사망 당시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가 생존한 해병대원도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면서 “생존 해병에게 동일한 진술을 무의미하게 반복시키는 일은 2차 가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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