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선정·인허가 관리’ 민간 맡겨 비효율
초기 사업비 수천억… 지연 땐 손해 막심
허가·착공 10년 걸리는 사업 10% 달해
법제화 추진 15년 만에 3월 특별법 통과
산업부로 인허가 ‘일원화’ 절차 간소화
환경성평가, 세부내용 못 정해 변수 우려
15년 전 한국 해상풍력엔 ‘첫 번째 기회’가 있었다. 2010년 이명박정부가 ‘해상풍력 세계 3위 강국 실현’이란 목표를 내걸고 첫 정부 종합계획인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을 내놨을 때다. 2019년까지 2.5GW(기가와트)를 보급하겠단 목표를 당시 세웠지만 지난해 누적 실적은 10% 남짓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그간 인허가 절차 개선·수용성 확보를 위한 정책이 공회전하면서 보급에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공급망 기업을 중심으로 한 신산업 육성까지 제자리걸음 중이다. 그 사이 중국·유럽·대만 등이 치고 나가면서 15년 전 ‘해상풍력 세계 3위 강국 실현’ 구호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내년 해상풍력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4회에 걸쳐 국내 생태계를 살펴보고 해외의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한국 해상풍력 도약을 위한 ‘두 번째 기회’를 모색해 본다

“30개 가까운 인허가 절차 중에 하나만 ‘미스’가 나도 착공까지 많이 늦춰져요. 그게 다 돈인 거죠.”
지난해 운전을 시작한 한 해상풍력발전사업 관계자는 최근 “인허가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준비한 돈이 점점 말라가던 중에 겨우 EPC(설계·조달·시공) 계약을 체결했다”며 이같이 한탄했다. 해상풍력발전사업 인허가 단계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사업 규모, 입지 등에 따라 차이가 클 수밖에 없지만 많게는 2000억원까지 들어간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각종 조사·설계·용역·인건비 등이 여기 포함된다.
최덕환 한국해상풍력협회 대외협력실장은 “해상풍력발전사업 특성상 앞 단계에 굉장히 많은 자금이 투입된다. 외국계 기업만 따져봐도 개개 사업별로 최소 1000억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이지만 우리나라 해상풍력발전사업은 인허가 절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2023년 고시로 해상풍력발전사업 공사계획인가기간(허가∼착공)을 ‘5년’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실제 현재 추진 중인 사업 10건 중 8건 가까이가 이 기간을 초과했거나 초과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돈인데 ‘세월아 네월아’
15일 전력거래소 ‘2025년도 상반기 발전소 건설사업 추진현황’ 자료를 토대로 현재 추진 중인 전국 해상풍력발전사업 총 43건을 분석한 결과 예정된 공사계획인가기간이 5년을 넘는 사업이 무려 79.1%(34건)나 됐다. 나머지 사업 중 5건(11.6%)만이 예상 착공 시점을 고려할 때 공사계획인가기간이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로 정한 5년 이내에 들어왔다. 남은 4건(9.3%)은 착공 시점을 밝히지 않은 경우였다.
산업부 고시 이전에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발전사업의 경우 공사계획인가기간이 7년까지 인정된다. 이 기준을 초과하는 사업 비율 또한 27.9%(12건)로 만만찮은 수준이다. 산업부가 공사계획인가기간을 지정한 건 해상풍력 등 발전사업 이행의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공사계획인가기간을 조정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심각한 건 공사계획인가기간만 10년 내외에 이르는 사업이 10%를 넘는다는 것이다.
전남 압해풍력발전소의 경우 2015년 3월 발전사업허가를 얻어 착공 목표 시점을 2026년 4월로 제출해 공사계획인가기간이 10년을 넘는 유일한 사업이었다. 이어 전남신안해상풍력(9년6개월), 부산 청사포해상풍력발전사업(9년3개월), 울산 동남해안해사풍력발전사업(9년3개월), 울산 이스트블루파워해상풍력발전소(9년2개월) 등 4곳이 9년을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상황이 이런 건 결국 정부가 그간 해상풍력발전 입지 선정·관리를 사실상 민간에 전적으로 맡겨 놓은 탓이다. 2010년 이명박정부 시절 내놓은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에 ‘해상풍력 예정부지 법제화 추진 검토’란 내용으로, 2020년 문재인정부 시절 나온 ‘해상풍력 발전방안’에선 ‘계획입지제도 도입을 위한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과제 중 하나로 명시하면서 정부 주도 입지 선정·관리가 논의됐지만 모두 임기 내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올 3월 국회에서 해상풍력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인허가 일원화와 함께 정부 주도 입지 제도가 법제화됐다. 정부가 관련 논의를 시작한 후 무려 15년이나 걸려 만든 변화였다.

◆어떤 환경성평가? 어떤 민관협의회?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해상풍력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조성한 발전지구 사업자는 인허가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부에 실시계획 승인을 신청하면서 28개 법령 관련 인허가 서류를 일괄로 제출하면 산업부가 각 인허가 기관과 협의해 처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사업자가 개개 법령에 따라 각 기관에 직접 서류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느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오는 9월 초안이 나올 예정인 해상풍력특별법 시행령 내용에 따라 추후 발전사업 진행 속도에 큰 차이가 날 수 있단 전망을 내놓는다. 이들이 주목하는 건 28개 법령 인허가 외에 ‘환경성평가’와 ‘민관협의회’ 부분이다.
김은성 넥스트 부대표는 “기존 환경영향평가·해양이용영향평가를 대체하는 절차로 ‘환경성평가’라는 새 절차가 법에 들어왔는데 디테일이 없는 상황”이라며 “(시행령에서) 환경성평가를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소요기간이 길어질 수 있고 애초 법 취지에 어긋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 법 조항을 논의하는 단계에서 소관 부처인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세부내용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해 시행령에 미뤄 놓은 상황이란 설명이다.
발전지구 지정 단계에서 지자체가 주관하는 민관협의회의 경우 주민수용성 확보를 위해 중요한 절차이지만 법에는 그 운영 기간, 분쟁 조정 방법, 인적 구성 등 구체적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는 상황이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관협의회에 전문가·공익위원이 많이 들어가도록 해 원래 취지인 입지나 기본설계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어민이나 인근 주민 위주로만 구성되면 이익공유나 보상 문제는 협상하는 데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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