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 3급 비밀인 암구호(아군과 적군 식별을 위해 정해 놓은 말)를 담보로 급전을 빌려 간 군인들에게 터무니없는 고리를 적용해 불법 추심한 대부업자가 항소심에서 감형받았다.
전주지법 제3-3형사부(정세진 부장판사)는 15일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및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37)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또 범행을 도운 대부업체 직원 B씨에게는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다른 직원 C씨에게는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군인인 채무자에게 암구호를 요구하고 추심 과정에서 이를 빌미로 협박했다"며 "이러한 범죄는 단순한 경제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군 기강 문란, 나아가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고인들은 불법 대부업을 영위한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피고인들이 항소심에 이르러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A씨 등은 대구시 수성구에서 무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2023년 5월∼2024년 8월 군 간부 등 15명에게 1억6천여만원을 빌려주고 이자로만 9천800만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이 채무자에게 적용한 최고 금리는 법정이자율(연 20%)의 무려 1천500배에 달하는 연 3만%였다.
A씨 등은 군 간부인 채무자들에게 암구호나 피아식별띠(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군모나 군복에 두르는 띠), 부대 조직 배치표, 산악 기동훈련 계획서 등 군사 비밀을 담보로 요구했다.
이 중 암구호는 전·평시에 대한민국 육군 및 해군, 공군, 주한미군 등에서 피아식별을 위해 사용하는 비밀 단어·숫자여서 외부에 누설될 경우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데도 A씨 등에게 통째로 넘어갔다.
A씨 등은 돈을 빌려 간 군 간부들이 제때 이자를 상환하지 않으면 '내일 부대로 전화하겠다', '군부대 직통(전화) 넣기 전에 돈 보내라' 등의 메시지를 보내 군사비밀을 담보로 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이 대출 과정에서 수집한 군사기밀은 적국이나 또 다른 민간인에게 흘러가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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